[특파원 저널] 평생 정신병에 시달려온 땡땡이 공주, 뉴욕에 왔다

미국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 남쪽 루이뷔통 매장. 14일 오후, 5가 한복판의 루이뷔통 건물이 크고 작은 검은 점들로 10층까지 뒤덮여 있다. 흰 건물을 집어삼킬 듯 감고 도는 '땡땡이'의 소용돌이에 뉴요커와 관광객들이 걸음을 멈춘다. 14개 쇼윈도 안은 온통 붉은 땡땡이다. 같은 시각 맨해튼 남쪽 '허드슨 강변 공원'. 하마의 등과 무당벌레를 섞어놓은 듯한 모양의 조형물 사이에서 뉴요커들이 일광욕을 즐긴다. 새빨간 바탕에 흰 원이 반복적으로 그려진 이 설치 작품의 이름은 '새로운 공간으로 가는 이정표'. 루이뷔통 매장의 땡땡이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괴짜 여성 작가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83)의 작품이다.

강박적인 괴짜 천재 작가로 불리는 구사마의 땡땡이가 뉴욕의 여름을 점령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12년 여름, 39년 만에 돌아온 '땡땡이 공주'가 뉴욕을 사로잡았다"고 전했다. 올해 여름 뉴욕에서 구사마의 땡땡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미술관·매장·공원 등은 6개다. 올해 구사마의 작품을 디자인에 활용한 '구사마 라인'을 선보인 루이뷔통은 5가 매장과 별도로 맨해튼 남부 소호(SoHo) 지역에 구사마의 땡땡이와 관련 제품을 주제로 한 '팝업 스토어'(특정 기간만 설치됐다가 철거하는 매장)를 냈다.

뉴욕 '휘트니 미국 미술관'에선 12일 구사마의 회고전이 막을 올렸다. 9월 말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엔 지난 60년 동안 구사마가 그린 작품 345점이 선보인다. 구사마는 1957~1973년 뉴욕에 살면서 작품 활동과 아울러 누드 모델의 몸에 땡땡이를 그려 거리에 세워 놓는 등의 기발한 행위예술을 선보여 이름을 날렸다. 휘트니 미술관과 별도로 가고시안 갤러리도 구사마의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며, 8월엔 구사마의 작품집 출판이 예정돼 있다.

구사마는 어린 시절부터 환영(幻影)을 보는 등 거의 평생 정신병에 시달려 왔다. 구사마는 정신적 압박을 이유로 뉴욕을 떠난 후 1977년 일본 도쿄(東京)의 정신 병원에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갔고, 지난 35년 동안 병원에서 살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20대에 시작된 그의 강박적인 땡땡이 작품은 6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39년 전 뉴욕을 떠났던 80대의 괴짜 일본 예술가의 화려한 '컴백'이 나날이 난해해지는 현대 미술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해하기 난감한 현대 미술 작가들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구사마의 작품은 단순하고, 첫눈에 '화려하고 예쁘다'는 인상을 준다. 10일 노랑과 검정이 섞인 땡땡이 옷을 입고 뉴욕 루이뷔통 매장을 찾은 구사마는 "나는 요즘도 매일 분투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이 많은 동그라미를 내가 칠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