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인문학] 진보장터, 삼강주막… 백성은 삶과 꿈을 키웠다

이튿날 조선 후기 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간직한 송소고택에 들르자 11세손 심재오(57)씨가 탐방단을 맞이했다. 99칸 저택의 특징을 설명하는 황용모 해설사의 흥미진진한 입담은 청중을 사로잡았다. 낙동강 700리 길에 마지막 남은 삼강주막은 2칸 크기로 작지만 기능에 충실한 구조였다.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이 만나는 삼강나루의 주막은 보부상의 숙식 제공처에서 이제 공연과 음식이 풍성한 축제의 장소로 거듭나고 있었다.

장터는 오랫동안 물물교환과 인적교류의 마당이었고 독립만세를 외쳤던 역사적 장소였으며 이종문화를 집약한 후 각 지역으로 전파하는 거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장터는 쇠락을 묵묵히 견디고 있다. 참석자 황원권(62)씨는 "콘텐츠가 부족하고 스토리가 부재한 장날을 되살릴 방안이 시급하다"며 안타까워했다.

 

김주영 소설의 키워드를 세 단어로 압축하면 '엄마, 유년 그리고 장터'이다. 경북 청송의 진보 장터는 유년의 그에게 가장 넓은 세계였고 성년 이후로는 창작의 원형지대와 같은 곳이다. 청송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마이크를 잡은 작가는 "서양 민주주의를 꽃피운 장소가 '광장'이듯 우리 서민문화를 길러낸 공간으로 '장터'를 빼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도서관·교보문고·조선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길 위의 인문학' 탐방단 80여명은 13~14일 '장날 따라, 객주 따라'를 주제로 청송·상주·예천 지역을 답사했다. 예전 일정이 지역 인물과 문화재에 방점을 두었다면 이번엔 장터의 인문학적 가치에 초점을 맞췄다. 첫날 진보장터와 객주 문학 마을, 주왕산 트레킹을 마친 일행은 이튿날 송소고택(松韶古宅)과 삼강주막, 도남서원(道南書院) 등지를 방문했다.

첫날 저녁 가수 김현성의 사회로 진행된 북 콘서트에서 한동수 청송 군수는 소설 '객주'의 옹기장수 호객 대목을 구성지게 낭독했다. 215억원 규모의 '객주 문학마을' 설립을 이끈 한 군수는 문학으로 청송의 문화적 품격을 높인 단체장으로 꼽힌다. 손종흠 방송통신대 국문과 교수는 조선 후기 보부상이 방각본(坊刻本) 소설을 전국적으로 유통시키면서 등장한 전기수(傳奇?)를 소개했다. 전기수는 조선 후기의 직업적인 낭독가로, 손 교수는 7세부터 직접 전기수를 했던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