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비엔날레(제13회 건축전) 누가 가나" 건축계 시끌

다음 달 29일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에서 열리는 '제13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건축전'의 한국관 참여 작가 선정을 두고 건축계의 논란이 뜨겁다. 김병윤 대전대 건축학과 교수가 커미셔너를 맡아 공모를 통해 선정한 참여 작가진에 대형 설계사무소 임원이 포함되자 유명 건축가들이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고 나선 것. 한국관을 주관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참여 작가 선정과 운영 계획을 밝힐 예정이지만 중진부터 소장파까지 건축계가 들끓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1980년 시작돼 2년마다 열리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건축전은 세계 건축 흐름을 총망라해 볼 수 있는 건축계 최대 행사다. 올해는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총감독을 맡아 '커먼 그라운드(common ground·공통 배경)'라는 주제로 열린다. 55개국이 참여해 국가관을 설치할 예정이다. 김병윤 커미셔너는 '건축을 걷다(Walk in Architecture)'라는 주제를 내세운 한국관 참여 작가로 최근 공모를 통해 김현수, 윤창기, 박진택, 오영욱, 김태만(해안건축 대표), 박승홍(디엠피건축 대표), 이상림(공간 대표), 한종률(삼우건축 부사장) 등 8개 팀을 선정했다.

논란의 계기는 이들 중 김태만, 박승홍, 이상림, 한종률씨 등 네 사람이 대형 설계사무소 임원이라는 점. 이들의 선정에 반대하며 민현식 커미셔너 선정위원회 위원장이 최근 사퇴했는가 하면 역대 커미셔너들도 얼마 전 모여 난상토론을 연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았던 건축가 승효상씨는 "비엔날레는 순수한 작가주의를 표방하고 있고, 국가관은 그해 해당 국가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한 건축가나 건축 이슈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실제로 설계를 하지 않는 대형 설계사무소의 임원이 대표 작가가 되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했다. 건축가 김영섭 성균관대 교수도 "풍찬노숙(風餐露宿)하는 작가 정신으로 건축을 해 온 이들이 아닌, 비즈니스를 하는 대형 회사 대표가 우리 건축의 대표가 된다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과거 비엔날레에 참여 작가로 선정됐던 모 건축가는 "건축전 참여는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참여하는 것에 비견될 만큼 영예로운 일이다"며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공사) 등 우리 건축계의 병폐를 이끌어온 대형설계사무소가 국가대표가 된다는 건 국제적 망신"이라고 했다.

반면 김병윤 커미셔너는 "사실 이제까지 비엔날레 한국관이 몇몇 건축가에 의해 그들만의 잔치에 그친 게 사실"이라며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공모를 실시했는데 소위 '유명 작가'라는 사람들이 거기엔 참여하지 않고 이제 와 문제 삼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작가를 표방하는 건축가들과 대형 설계사무소 간 깊은 불신의 골이라는 우리 건축계의 문제점을 공론화해 조명해 볼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 건축계 인사는 "공모 형식을 취했다곤 하지만 선정 이유나 근거를 투명하게 밝히지 않는 커미셔너 측이나,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알아서 찾아와 비엔날레 참여를 요청해올 것으로 생각하는 일부 유명 건축가들이나 모두 문제"라고 했다. "양측이 감정적으로 대립할 게 아니라 선정된 건축가들이 과연 한국 건축을 대표할 정도로 실력 있는 인물들인지 제대로 검증하는 쪽으로 논의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