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밥을 해준다는 것… 그건 사랑·설렘의 부활이야

'어쨌든 그 와중에도 어머니가 거르지 않는 게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밥을 짓는 일이었다.(중략) 어떻게 바람난 아버지를 위해 갈치를 굽고, 가지를 무치고, 붕어를 지질 수 있는지. 그것도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으로만 말이다.'(김애란의 '칼자국' 중)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을 때나 이미 친분이 있는 사이에선 '밥 먹자'는 말을 쉬이 건넬 수 있다. 그러나 '밥을 해준다'는 건 결코 쉬운 말도, 간단한 일도 아니다. 다른 사람이 해 준 밥을 먹어 본 경험이 있다면 그게 어떤 의미고 얼마나 귀한 건지를 알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애정과 정성. 사나다 아츠시 감독의 '하와이언 레시피'는 누군가에게 '밥을 해준다'는 게 뭔지를 아는 영화다.

소원을 이뤄준다는 '달 무지개'를 보러 하와이 북쪽 호노카아 마을에 여자친구(아오이 유우)와 함께 온 대학생 레오(오카다 마사키)는 여행 중 여자친구와 다투고 헤어진다. 휴학하고 다시 호노카아를 찾은 레오는 동네 영화관에서 영사 보조로 일하다 극장 근처에 사는 노부인 비이(바이쇼 치에코)를 알게 된다. 라면만 먹고 사는 레오를 위해 비이는 매일같이 밥을 하기 시작한다.

남편을 잃고 50년간 혼자 살아온 비이가 단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레오에게 매일같이 밥을 해주는 건 아닐 것이다. 밥을 해줄 대상이 생기면서 비이는 사랑과 질투, 설렘과 실망 등 한동안 잊고 살았던 감정들을 되찾는다. 밥을 해줄 때 그는 레오의 어미이자 친구이고, 연인이기도 하다. 예쁘고 섹시한 또래 여자의 뒤꽁무니나 쫓는 20대 초반의 레오가 이런 비이의 진심을 금방 알아줄 리 없지만, 비이의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다각다각' 칼 소리와 '보글보글' 국 끓는 소리에 그도 '남자'가 돼간다.

작가 김애란은 '칼자국'에서 어머니가 밥을 하는 게 '어머니가 엉겁결에 찾아낸 떳떳함 같은 것이었다'고 했다. 밥을 해주는 것이야말로 삶의 늘그막에 선 할머니(비이)가 청년(레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떳떳하고도 우아한 사랑 고백일는지도 모른다. 19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이것이 포인트!

#대사 “늙었다고 하지 못할 건 없어!”(호노카아 마을의 80대 할아버지가 레오에게서 성인 잡지를 받아들고서 하는 말)

#장면 비이가 새로 산 꽃무늬의 원색 원피스를 입고서 레오 주위를 맴돈다. 레오가 밥먹느라 알아채지 못하자 비이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떠난다.

#이런 분들 보세요 혀끝에 남은 조미료 맛이 지겨워 어머니의 담백하고 맛있는 된장국이 그리운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