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와 손잡는 화학… 산업계 '오픈 이노베이션' 붐

독일 자동차 업체인 BMW와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지난달 말 독일 뮌헨에서 전기 자동차와 스포츠카·경차 공동 개발을 위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도요타는 BMW에 연료 전지 기술을 제공하고, BMW는 고급 차에 적용되는 경량(輕量)·초강력 재질인 탄소섬유 기술을 도요타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미국 자동차 업체인 포드도 지난달 IT(정보기술)산업의 중심지인 실리콘밸리 한가운데에서 미래 자동차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소를 열었다. 빌 포드 포드 회장은 "포드는 지난 100년 이상 스스로 혁신을 창출했지만, 앞으로 독자적 혁신 창출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방형 혁신' 즉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 전 세계 산업계의 핵심 화두(話頭)로 자리잡고 있다. 개방형 혁신이란 한 기업이 처음부터 끝까지 기술 개발과정을 수행하는 폐쇄형 혁신에 대비되는 말이다. 기술 수준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기술의 융합화가 진행되면서, 개방형 혁신이 기업 생존의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기술 수준 고도화로 독자 혁신 불가능해져"

과거에도 기업끼리 전략적 제휴를 맺는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의 제휴는 이미 개발된 기술을 공유하고 시장을 확대하려는 낮은 수준의 협력이었던 반면, 개방형 혁신은 기업이 생존을 위해 미래 핵심기술을 공동 개발하는 높은 수준의 협력이라고 할 수 있다.

개방형 혁신이 대세로 자리잡는 것은 최근 들어 기술 수준이 갈수록 고도화되고 경쟁 환경이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 보잉의 최신형 항공기인 '드림라이너'에는 볼트부터 엔진까지 크고 작은 부품 400만개 이상이 들어간다. 보잉이 모든 기술과 부품을 자체 개발하고 제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전기 자동차 기술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기업이 전지(電池)를 독자 개발하려면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 하고, 그렇다고 전지 업체가 자동차를 독자 개발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이 기아차와 전기차 보급·개발을 위한 협력에 나서고, LG화학이 미국 GM과 전기차에 들어가는 전지를 공동개발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장대련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기업들이 시장 지배력을 높이고 새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기업동맹을 시도하고 있다"며 "이는 기업들이 생존하기 위한 진화의 방법이자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 개방형 혁신 소극적… 도태될 수 있어"

개방형 혁신은 최근 이종 산업을 넘어 동종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경쟁관계에 있는 동종 업계의 기업이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핵심 기술 개발에 갈수록 많은 투자 자금이 들어가는 상황에서, 투자 위험을 줄이고 시장을 공동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일본의 대표적 전자업체인 파나소닉과 소니가 지난달 말 차세대 TV로 각광받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기술을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한 것도 이런 이유다. 전반적인 실적악화로 투자 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두 회사가 보유한 핵심 기술을 활용해 OLED TV를 조기 양산(量産)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OLED 시장에서 한발 앞서가고 있는 한국 기업을 추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주 삼성전자와 포스코가 전자제품 외장재를 비롯한 신소재 공동개발에 나서기로 양해 각서를 체결하기도 했지만, 국내 기업들은 개방형 혁신에 여전히 소극적인 모습이다.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과 개방형 혁신에 나서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종 산업분야의 해외 기업과 미래 신기술을 공동 개발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기업이 적지 않다. 기술이 유출돼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컨설팅 업체인 한국모니터그룹 장승세 부사장은 "한국 기업들은 모든 혁신을 내부에서 창출하려는 경향이 여전히 강하다"면서 "하지만 기술발전의 속도가 빨라지는 상황에서 폐쇄적 혁신 전략을 고수한다면 세계 시장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

미 버클리대 헨리 체스브로 교수가 2003년 제시한 기술혁신 전략이다. 기업들이 연구·개발·상업화 과정에서 다른 기업이나 대학·연구소 등 외부 기술과 지식을 활용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