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前 대통령이 직접 모으고 쓴 40년의 비밀

고(故) 최규하<사진> 전 대통령의 문서 2268건, 사진 1만8078장, 선물 1241점 등 유품 2만7000건이 경기도 성남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16일 기증됐다. 문서와 사진은 지난 1946년부터 1988년까지 최 전 대통령의 공직 재임 시절 기록들이다. 그는 이 기간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을 시작으로 외무부 통상국장, 외무부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국정자문회의 의장을 거쳤다.

최 전 대통령은 기록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그는 행정·외교 문서를 모아두었음은 물론 구체적인 사실을 친필로 기록했다. 그는 문건을 클립이나 철로 묶은 후 큰 사안별로 다시 대봉투에 담았다. 1969년 한미정상회담 관련 문서를 하나의 대봉투에 담은 후 봉투 겉장에 주제를 적어두기도 했다. 봉투는 봉인하지 않고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도록 했다. 일종의 색인을 해둔 셈이다. 강성조 국가기록원 기록수집과장은 "사견(私見)을 배제하고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고자 했던 노력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원래 최 전 대통령의 유품은 2006년부터 서울 마포구 서교동 생가에 보관돼 있었다. 1960년대에 지은 2층 양옥 주택으로 문서들은 주로 1층 서재에 쌓인 채 보관됐다. 일부는 지하 방 안 종이 박스에 담겨 있기도 했다. 최 전 대통령의 장남 최윤홍(67)씨는 16일 기증식에서 "옥상 배수로를 감나무 낙엽이 막아 차오른 빗물이 실내 천장에 새어 들어오기도 했다"고 밝혔다.

장남 최씨는 최 전 대통령이 2006년 10월 숨을 거둔 직후 대학·연구소·언론사의 기록 공개 요구에 시달렸다. 최씨는 최 전 대통령의 생가 문을 걸어 잠그고 사설 경비업체와 계약해 기록물 접근을 막았다. 최씨 자신도 문서들을 일부러 보지 않았다고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세인들의 평가 대상이 되는 일을 유족들이 원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2009년 국가기록원에 유품 보관을 타진한 최씨는 3년 만인 지난 5월 기증을 최종 결정했다.

기증된 최 전 대통령의 문서는 대통령기록전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공개·비공개·부분공개로 분류된다. 이 결정은 1년 넘게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