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가 필요해 그 대사, 필(feel) 오네

'그가 날 떠난 건 괜찮다. 그러나 그가 괜찮은 건 정말 괜찮지가 않다.…'(주인공 주열매의 대사)

애써 멋 부려 쓴 말도, 대단한 문장도 사실 없다. 그런데도 20~30대 여성들은 "요즘 이 드라마 속 대사가 심장을 후벼 판다"고 말한다. tvN 수목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 2012'(이하 '로필 2012')가 최고 시청률 2.5%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케이블 채널 시청률 1위를 지키고 있다. 혼전 동거, 자유로운 성의식 등에 대한 일부의 지적도 있지만 방송이 끝날 때마다 드라마 제목이 주요 포털 사이트에 실시간 검색어 1~2위로 올라오는가 하면 '대사 어록'만 모아놓은 인터넷 블로그 및 게시판 글도 심심찮게 보인다. 방송 관계자들은 "시즌 1 때부터 꾸준히 대본을 집필했던 정현정 작가의 필력이 인기의 1등 공신"이라고 한다.

14일 정 작가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그는 "될 수 있으면 모양 내지 않고 지극히 일상적인 톤으로 대사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도 시청자들이 대사가 좋다고 해주시니 감사하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하다"고 했다.

―작년 '로필 시즌1'에 이어 올해도 대사가 무척 솔직하다.

"처음 작품을 기획할 때부터 '30대 여자들의 연애담'을 쓰려고 했다. 복수나 갈등, 심각한 치정이나 삼각관계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대신 편하고 가볍게 볼 수 있는 드라마로. 하지만 30대 여자들이 주인공인 작품에서 순진한 판타지만 그릴 순 없었다. 현실을 어느 정도 녹이기로 했고, 스태프들과 여러 차례 회의했다. 시즌 1부터 회의를 거듭하다 보니, 다들 과감하고 솔직해지더라. 은밀한 성적 취향부터 부끄러운 연애사까지 쏟아져 나왔다."

―사랑의 설렘·흥분을 주로 다루는 다른 드라마들과 달리 처음부터 주인공들이 이별하는 얘기를 그린다.

"연애를 4단계 정도로 나눠 본다면 설렘이 1단계, 서로 마음이 같음을 확인하는 게 2단계, '왜 너와 나는 이렇게 다른가'를 느끼고 부딪히는 게 3단계, 그 이후의 이야기가 4단계쯤 되는 것 같다. 보통 멜로드라마는 2단계까지만 보여주지만, 난 진짜 사랑은 3단계부터라고 믿는다. '너와 나는 왜 다른가'를 놓고 다투다가 종종 극한으로도 치닫는 연인의 모습 말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 밑바닥을 보고 민얼굴을 확인하고, 나중엔 그것까지 끌어안는 것. 그게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여성들의 판타지에 기댄 장면이 많다. 헤어졌지만 그래도 가까이에 있는 남자친구, 새벽에도 달려오는 또 다른 남자까지….

"'백마 탄 왕자님 이야기'보단 '주변을 잘 찾아보면 있을 것 같은 남자'를 통해 새로운 판타지를 그리고 싶었다. 8부에서 주열매(정유미)에게 신지훈(김지석)이 새벽 2시에 팥빙수를 만들어서 달려오는 장면에 시청자들이 특히 열광했는데, 여성의 가슴속 진짜 판타지란 결국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돈으로 사준 자전거'보단 '문 닫힌 커피숍을 다시 열고 만들어 온 팥빙수'에 끌리는 것 말이다. 신지훈을 통해 '자존감이 넘치는 덕에 타인에게 너그럽고 따뜻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연애 얘기를 쓰고 싶기도 했다. 그런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판타지일 순 있겠지만."

―가장 쓰기 어려운 장면을 꼽는다면.

"키스 신. 현실에서 연인들은 자연스럽게 입맞춤을 하지만, 드라마에선 모든 키스가 이유가 있고 계기가 있어야 한다. 매번 산을 넘는 기분으로 키스 신을 완성한다."

―정 작가 본인의 사랑에 대한 태도는 세 주인공 중 어떤 인물에 가까울까.

"나 스스로는 윤석현(이진욱)을 닮았다고 생각하지만, 주변에선 주열매를 닮았다고들 한다. 특히 열매가 성질부리거나 고집 피울 때. 열매가 반성할 때 나도 같이 반성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