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터민 출신 원정근 씨는 신의주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대한민국으로, 파주에서 옥천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기까지 오랜 세월을 인내했다. 탈북자라는 꼬리표 대신 바지런한 귀농인이라는 훈장을 얻은 오늘이 있기까지 그가 흘린 땀방울의 씨앗은 굵고도 구슬펐다. 비록 1년 차 새내기지만 귀농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는 원정근 씨의 일상을 엿본다.
‘6시 내 고향’을 보며 키운 귀농의 꿈
KBS 1TV에서 방영 중인 ‘6시 내 고향’은 전국 곳곳의 농어촌을 누비며 고향소식을 전하는 프로그램이다. 가슴 훈훈한 이야기로 사랑을 받는 이 프로그램은 놀랍게도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힘을 지녔다. 바로 2005년 신의주에서 목숨을 걸고 압록강을 건넌 탈북자 원정근 씨와 그 가족의 인생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수입이 어려우면 기초수급자로 분류된다지요? 고생 끝에 얻은 대한민국 국적인데 기초수급자가 될 순 없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월급, 휴가,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잠 아껴가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원정근 씨와 아내, 그리고 두 딸은 식품회사와 골프장시설관리를 거쳐 5년 반 동안 부단히 애를 썼다. 네 식구 모두 생활전선에 뛰어든 결과 한 달 수입이 무려 800만 원에 달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통장에 돈은 쌓여도 마음은 헛헛한 시절이기도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새롭게 익혀야 하는 대한민국의 문화는 적응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층간소음이 심한 아파트와 여러 명이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엘리베이터는 영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자동차 경적소리로 가득한 도시 생활도 이력이 날 때쯤 원 씨가 마음을 뺏긴 것이 ‘6시 내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그램에 귀농인들만 나오면 귀가 솔깃했습니다. 집 짓는 데 드는 돈은 얼만지, 뭘 기르며 사는지, 지역은 어떻게 선정했는지 궁금한 것 투성이었죠. 그맘 때쯤 도시에서는 평생직장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고요. 귀농인들을 보면서 육체는 힘들어도 땀 흘린 만큼의 성과를 얻는 게 농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수록 도시를 떠나 조용한 시골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깊어졌죠.”
사통팔달 옥천군과 깻잎에 마음을 뺏기다
원 씨는 결심 끝에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서 진행하는 ‘영농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한편 회사가 쉬는 날이면 ‘6시 내 고향’에 나온 시골 마을을 찾아다니며 일터를 물색했다. 귀농지 선택이 가장 시급한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등 안 가본 곳 없이 두루두루 발품을 팔았지만 쉽게 결정 내릴 수 없었다.
“‘6시 내 고향’을 보면 방송이 끝날 즈음 동네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놀러 오세요’하고 외치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듣고 직접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곰취나물에 끌려 방문한 강원도는 추운 날씨 때문에 난방비가 걱정되더군요. 여수나 거제도는 바닷바람에 하우스가 날아갈까 하는 걱정이 들었고요. 그때 방송에서 눈여겨봤던 옥천군 안터마을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방문해 보니 체험 위주의 마을이라 하우스며 집 지을 터가 없었어요. 그때 근처에 깻잎농사 단지가 있다면서 이 동네를 견학시켜주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끌리면서 여기다 싶었죠.”
지리상 대한민국의 정중앙이어서 어디든 편히 이동할 수 있는 옥천으로 마음을 정하고 나니 품목은 자연히 깻잎으로 결정됐다. 사실 깻잎을 선택한 데에는 하늘과 땅 차이인 남북의 깻잎 식습관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 와서 고깃집에 가보니 깻잎을 날것으로 먹더란 말입니다. 북에서는 볶아먹거나 장아찌로는 담가 먹어도 쌈을 싸서 먹는 법은 없거든요.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해서 귀농 첫 작목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판로도 어렵지 않아 보였고요.”
과수나 축산은 안정적인 수입을 얻기까지 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원 씨. 여유자금이 없는 새터민 입장에서 씨 뿌린 뒤 한 달 만에 소출이 생기는 깻잎은 더욱 매력적인 작목이었다.
“저희 농장에 견학 오는 새터민들이 많은데 제가 누차 강조하는 사실이 있어요. 귀농하자마자 큰 이익을 얻겠다는 생각은 실패의 지름길이라는 것이죠. 다만 돈의 유통이 빠른 작물을 조언해줄 순 있습니다. 시간 투자 대비 수확이 빠른 깻잎, 부추, 상추에 집중하면 1년 365일 수익을 얻을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깻잎을 심은 건 탁월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새터민 대표로 타의 모범을 보일 것
북에 있을 때 원 씨의 직업은 군 장교였고 아내는 학교에서 경리로 일했다. 비교적 중산층에 속하는 안정적인 생활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정착하려면 북에서 내가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게 원 씨의 생각이다.
“북에서 간부 노릇을 오래 했으니 아무래도 누구 밑에서 일하는 것보다 사람을 부리는 게 익숙하죠. 그렇지만 환경과 직업이 바뀌면 명함도 바뀌어야 합니다. 귀농을 했으면 열심히 농사를 짓는 게 제가 해야 할 몫이죠.”
과거의 영광보다는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데 주안점을 둔 원 씨는 귀농 생활의 첫 번째 덕목으로 ‘타의 모범이 되자’는 가치관을 꼽았다.
“도시에서도 반드시 지켰던 정신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 게으름 피우지 않았던 직장 생활이에요. 덕분에 회사에서 제주도로 가족여행도 보내주고 상여금도 많이 챙겨주더군요. 귀농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으름피우지 않으면 노력하는 만큼 수익이 나겠죠. 또한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지역주민에게 신뢰를 얻으려면 절대적으로 타의 모범이 되는 모습부터 보여줘야 합니다.”
지자체가 귀농인들에게 소정의 지원을 해주고 교육을 도맡아 한다는 사실도 몰랐다는 원 씨 가족. 오로지 깻잎농사를 먼저 지은 선배들을 무작정 쫓아다니며 농사일을 배운 그들의 노력은 이웃에게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처음엔 다른 분들이 깻잎 10박스 딸 동안 저흰 2박스밖에 못 땄어요. 농사가 생소하다 보니 손이 느린 게 당연했죠. 비닐하우스 한 동에 있는 깻잎을 다 따는 데 16시간 걸린 적도 있어요. 밤늦도록 형광등 켜놓고 작업하기 일쑤였고, 모르는 건 선물 하나 사 들고 무조건 지역주민을 찾아가 여쭤봤어요. 저희 사는 모습이 궁금해 찾아오시는 분들께는 커피 한 잔이라도 대접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점점 저희를 인정해주시고 외려 배울 점이 많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워주셨어요.”
옥천군의 샛별 귀농인
“처음엔 정말 맨땅에 헤딩하며 농사지었어요. 재단에서 영농교육도 받았지만 이론과 실제는 다르더군요. 당장 씨 뿌린 다음엔 뭘 해야 하는지도 몰라 당황했으니까요.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오죽하면 다짜고짜 군수님을 찾아가 지원받을 방법을 여쭤볼 정도였어요.”
농사 팁을 얻으려 스스로 발품을 판 것이 원 씨에게는 호재로 다가왔다. 덕분에 올해 군에서 하우스 2동을 지원해주는 경사가 일어난 것이다. 3개월이면 떠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주위 시선에도 불구하고 6개월만에 일감을 늘린 그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새터민 이미지가 썩 좋은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가 귀농에 실패하고 도시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열심히 일하는 게 당연하죠. 앞으로도 주민 여러분께 누가 되지 않고 저도 보람을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
옥천군이 주목하는 샛별 귀농인이 된 원 씨는 요즘 살맛나는 인생을 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MBC 지역방송에 출연하는 기회도 얻게 됐는데 TV를 보고 감동했다며 생면부지의 시민이 전화를 걸어오는 기쁨도 누렸다. 이처럼 귀농 1년 만에 자신의 입지를 단단히 다진 원정근 씨의 사례는 귀농인의 모범답안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