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 다른 나] 살사 춤에 빠진 김태수(38) 트라이본즈 전산실 차장.

"본업은 패션사 전산 업무 서른 세 살에 처음 접한 춤
사람들 다양한 직업에 놀라 남자가 줄곧 춤 리드하고
즉흥적 교감 능력이 중요 방심하다 눈에 멍 들기도
댄스팀 단체전 1위 차지목표는 춤을 '즐기는' 것"

빠른 8박자의 음악에 맞춰 몸과 팔을 흔들고, 발을 구르며, 다음 스텝을 생각한다. 춤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사라지는 몰입(沒入)의 순간은 짧지만 여운은 길다. 요즘 나는 그 긴 여운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고, 주말이 다가오면 다시 그 짜릿한 몰입의 순간에 마음이 설렌다.

나는 라틴 음악에 재즈를 비롯한 미국적 리듬 스타일이 섞여 있는 '살사'를 추는 춤꾼이다. 주말이면 서울 홍대 앞의 한 살사 바에 모여 춤을 추고, '스카이라틴'이라는 살사 전문 동호회에서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친구의 손에 이끌려 처음 살사 바를 찾았다가 문화적 충격을 경험한 이후 만 5년, 햇수로 6년째 살사에 빠져 살고 있다.

내 직업은 전산 전문가이다. 대학에서도 전산을 전공했고, 지금은 패션회사인 ㈜트라이본즈의 전산실 차장으로 일하고 있다. LG패션 계열인 우리 회사는 '닥스' 와이셔츠와 여성 액세서리 '필그림', 여성 구두·잡화 '찰스앤키스' 등의 브랜드를 갖고 있다. 나는 사내 ERP(전사적 자원 관리) 시스템 및 각 매장의 웹포스를 관리하고 필요한 것을 개발한다.

요즘은 모든 매장의 POS(판매시점 관리) 기기가 연결돼 있어 입출고와 매출 확인 등은 전산 없이 불가능하다. 전산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순식간에 전체 회사로 전파되고 판매 현장의 사고로 직결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버그를 찾아내고 유지·보수하는 것이 내가 맡은 일이다. 한편으로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살사는 이런 내 생활에서 작은 해방구가 되어 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살사라는 춤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살사 바에 모인 사람들의 나이는 20대에서 40대 초반을 아우르고 있었고, 직업도 교수·회사원·의사·교사 등 각양각색이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오로지 살사라는 춤 하나로 모일 수 있다는 점이 경이로웠다. 도대체 이 춤에 무슨 매력이 있는지 한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사는 남자들이 익히기는 쉽지 않은 춤이다. 그리고 제대로 추려면 6개월~1년은 걸린다. 춤을 배우겠다고 왔다가 몇 달 동안 손도 못 내밀고 구석에 혼자 앉아 있다 가는 사람도 있다.

보통 남자 회원 10명이 시작하면 6개월이 지나기 전에 1~2명밖에 남지 않는다. 왜 그런고 하니, 남자가 내내 춤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듣고 여자에게 신호를 보내며 다음 동작으로 계속 이어가는 것이 남자의 역할이다. 익숙하지 않으면 서로 언짢을 수도 있고 자기에게 맞는 파트너를 찾기도 힘들다. 반면 여자는 초보라도 상대방이 잘 이끌어주면 잘 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 역시 처음 1년 동안은 거의 춤을 추지 못했다. 살사 수업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지만, 여성 파트너들에게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스카이라틴 동호회에서 다른 회원들을 지도하고 있다. 회사 업무상 전산에 익숙하다 보니 동호회의 인터넷 카페에서 운영진을 맡게 된 것도 내가 쉽게 발을 빼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데 일조했다.

살사는 자유로운 춤이다. 기본적 패턴은 있지만 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인다. 스포츠댄스가 격식 위주라면, 살사는 음악을 느끼며 파트너와 즉흥적으로 교감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서로 배려하지 않고 혼자만의 느낌으로 추다가는 같이 출 파트너를 구하기 힘들게 된다. 자칫 방심했다가 부상을 입기도 한다.

나도 두 번이나 눈에 멍이 든 적이 있다. 회사에서는 "문에 부딪혔다"고 둘러댔는데, 사실은 여성 파트너가 턴을 할 때 빠르게 회전하는 손에 눈을 얻어맞은 것이다. 물론 리딩을 잘못한 내 책임이다. 나 역시 빠르게 팔을 구부려 위로 올리는 동작을 하다가 여자 파트너의 가슴을 팔꿈치로 찍은 적이 있다.

살사는 유산소운동이다 보니 살도 많이 빠진다. 한 곡이 3~4분인데, 한 번 추면 보통 7~8곡을 소화하기 때문에 7곡을 연속으로 출 때면 100m를 달리는 속력으로 계속 달리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면 한 달에 4~5㎏은 쉽게 빠진다.

현재 스카이라틴 댄스팀(F.O.S·Flame of Sky)의 정단원이기도 한 나는 팀 소속으로 2009년 코리아 살사 콩그레스 단체전 1위, 지난 5월 전국살사대회 단체전 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연말연시에는 각종 파티에 축하 공연을 다니기도 한다.

하나의 춤을 익히고 나니 이제 다른 춤을 배워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그러나 주말 이외의 다른 시간까지 축내가면서 욕심을 부릴 생각은 없다. 지금도 내 목표는 잘 추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살사는 역시 내게 딱 맞는다.

취재·정리=신동흔 기자 dhshi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