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TALK] 영화 '건축학 개론', 90년대 '늙다리 팝'을 불러내다

한국 멜로 영화 사상 최대(410만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운 올 상반기 화제작 '건축학 개론'의 힘이 국내 팝 시장에서까지 발휘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판매량이 적다는 이유로 국내 발매 여부가 불투명했던 1990년대 유명 해외 팝그룹들의 앨범이 '90년대 감성'을 불러온 건축학 개론의 흥행 바람을 타고 잇따라 국내에서도 발매되고 있는 것.

워너뮤직코리아는 최근 '슬리핑 차일드'(1993)를 통해 큰 인기를 얻었던 팝그룹 '마이클 런스 투 록'이 4년 만에 낸 앨범 '스칸디나비아'와, 전 세계 30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한 90년대 대표적 얼터너티브 록밴드 '스매싱 펌킨스'의 새 앨범 '오셔니아'를 국내에 내놓았다. 유니버설뮤직코리아는 지난 17일 1995년 곡 '돈트 스피크'로 세계적 히트를 기록한 그룹 '노 다웃'이 11년 만에 발표한 정규앨범의 첫 싱글 '세틀 다운'을 공개했고, 소니뮤직코리아는 1992년 데뷔한 알앤비 황제 '알 켈리'의 앨범을 냈다.

한 음반 유통사 관계자는 "원래는 해외 앨범들 가운데 국내에서 500장 이상 팔릴 것으로 예상되는 것들만 라이선스를 맺고 국내에 들여온다"며 "예전 같았으면 '늙다리'로 취급당하며 판매가 부진할 것으로 예상돼 국내 발매가 안 됐을 90년대 팝스타들의 앨범이 '건축학 개론'이 불러온 90년대 감성 트렌드를 타고 국내에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음반사 관계자는 "마이클 런스 투 록의 경우 7집 앨범의 판매가 부진해 이번 8집도 국내 발매를 고민했지만 '건축학 개론'이 성공한 뒤 90년대 대표적 감성 밴드임을 고려해 앨범을 판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마이클 런스 투 록'의 앨범 속지에는 건축학 개론 배경음악으로 나왔던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언급하며 "문득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외국 밴드 한 팀이 떠올랐다"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8월 중순까지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에 1990년대를 풍미한 뮤지션들이 다수 등장하는 것도 '건축학 개론'이 다시 일으킨 90년대 감성과 관련 있다는 평이다.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지산페스티벌에 나오는 '라디오헤드'나 펜타포트페스티벌에 나오는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등도 따지고 보면 지금 잘나간다기보다는 90년대에 뜨거운 인기를 얻은 밴드들"이라며 "국내 가수들의 경우도 '윤도현 밴드'처럼 요즘 인기있는 그룹보다 90년대 감성을 가진 '들국화'나 '백두산'이 페스티벌 주요 무대를 장식하는 추세"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