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장년층의 시장에 카페·꽃가게 옮겨심은 청년들

지난 2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인왕시장. 야채·반찬 가게가 즐비한 시장 한편 테라스 카페 자리 커피 전문점에 지역 주민 박정자(52·주부)씨가 들어섰다. 박씨는 테라스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고 시장을 한번 둘러보더니 그날 살 물품들을 수첩에 적기 시작했다.

박씨는 한때 단골이었다가 발걸음을 끊었던 인왕시장에 요즘 다시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카페가 들어서고, 젊은이들이 창업한 꽃집 등이 생기자 "시장이 환해지고 깨끗해져 기분이 좋다"면서 "카페에 앉아 운치 있게 쇼핑을 즐긴다"고 말했다.

1960년 홍제천 주변 뚝방 시장으로 시작, 1972년 정식 시장으로 등록한 인왕시장은 1980~90년대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던 2000년대부터 조금씩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빈 점포가 늘어갔고, 신규 입점 상인이 없어 시장 안이 보기 흉흉할 정도였다. 젊은 상인들이 합류를 기피, 중·장년 상인들만이 남은 노(老)시장이 됐고, 고객도 온통 중장년뿐이었다.

쇠락하던 광경을 지켜보던 서대문구는 시장을 살리기 위해 직접 나섰다. 방치됐던 빈 점포를 정리하고, 시장 한쪽 구역을 정비, 8개 점포를 청년 창업자와 사회적 기업에 2년 동안 무상 임대했다. 전통시장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커피숍과 꽃집, 컵 케이크 점포 등이 새로 문을 열었고 깔끔한 공중 화장실도 만들었다. 공동 무료 배송센터도 개관, 시장 반경 2㎞ 이내 홍제·홍은·연희동은 물론 종로구 세검정, 은평구 녹번동까지 배달도 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청년 창업자와 사회적 기업이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인 자리 커피 전문점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커피 제조 기술을 가르치는 곳. 조만간 이곳에서는 학생들뿐 아니라 시장 상인·주민들을 대상으로 바리스타 교육도 할 계획이다.

샤론 플라워는 구세군 서울후생원 퇴소 청년들이 모여 만든 청년 창업 기업. 형편이 어렵거나 부모를 여읜 청년들이 생활하는 서울후생원은 고등학교를 마치면 퇴소해야 하는데, 이곳 출신 청년들이 꽃가게를 연 것이다. (02)391-0939

인왕시장 터줏대감들도 건재하다. 20년 넘게 국수만 고집스레 말고 있는 원조국수는 인근 관공서·상인들이 점심에 자주 들르는 맛집이다. 얼큰하고 칼칼한 잔치국수가 백미다. (02)396-9353

닭 알집과 부드러운 염통, 쫄깃한 모이집이 골고루 섞인 닭내장탕을 내오는 닭내장집에는 30년 넘은 단골이 적지 않다. (02)379-0864

신선한 닭을 파는 해마로 유통은 초복이던 지난 18일 하루 만에 닭 4000마리가 팔릴 정도로 문전정시(門前成市)다. (02)391-2786

야채와 과일이 '주종목'이었던 인왕시장 전통을 잇는 신광상회도 빼놓을 수 없다. 충남 서산 밭에서 직접 조달한 신선한 감자·양파·가지 등을 '착한' 가격에 살 수 있다. 가지 8개에 1000원. 일반 대형마트 절반 이하 가격이다. (02)379-8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