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밝은 한산도, 디자인 밝히다

이순신 장군이 '달 밝은 밤 수루(戍樓)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던' 그곳, 한산도가 대한민국 디자인 발전소가 된다. 버려진 건물이 젊은 디자이너들의 창작 공간으로 변신하고, 이곳에서 주민·디자이너·장인의 디자인 협업으로 이뤄지는 작품이 해외에도 전시될 예정이다.

경남 통영 한산면 하소리 134-1번지에 있는 옛 보건소 건물. 3년 동안 비어 있던 허름한 공간이 최근 단장을 했다. 의료 기자재, 캐비닛이 어지럽게 얽혀 있던 162㎡(약 50평)가 디자이너의 작업실과 전시실로 바뀌었다. 그저 벽지만 뜯어낸 벽 자체가 '진짜 빈티지'를 연출한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지역 공예 컨설팅 사업의 일환으로 만든 '한산 레지던시'다. 다음 달 초 정식 개관하면 서울에서 내려온 디자이너 10여명이 머물며 창작 활동에 들어간다. 진흥원 측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주도로 버려진 섬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 섬이 된 일본 나오시마처럼 한산도를 디자인 섬으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까지 세웠다.

도회적인 이미지의 디자인이 저 멀리 남쪽 한산도까지 내려간 이유가 뭘까. 최정심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은 "한산도는 한국의 디자인 DNA가 집중돼 있는 곳"이라 했다. 최 원장은 그 뿌리를 이순신에서 찾았다. 그는 "이순신은 1593년 한산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면서 한산도라는 비어 있는 공간을 어떻게 기획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위대한 디자이너였던 셈이다"고 했다.

명장(名將) 이순신은 실제로 전국의 명장(名匠)을 이곳으로 끌어모았다. 질 좋은 군수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칠장방(옻칠 공방)·야장방(철물 공방) 등 공방을 만들고 전국의 장인을 통영으로 모았다. 이것이 '통영 12공방'이 됐다. '한산도의 손기술'은 지금까지 이어져 무형문화재를 포함해 이곳 출신 장인이 200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한산 레지던시는 이처럼 한산도에 깊이 스며 있는 '한국의 수공예 전통'과 '한국 현대 디자인'을 접목하는 작은 거점 역할을 하게 된다. 프로그램도 현지 밀착형이다. 첫 프로그램은 8월 초 디자이너들과 진흥원 관계자, 주민이 참여하는 '디자인 캠핑'이다. 한산도에서 야영하면서 지역의 폐자재를 모은다. 어촌이라는 지역 특성을 감안해 폐어선·부표 등 어업 분야의 폐자재를 수집해 지역 장인과 함께 '업사이클링(upcycling·재활용해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것)' 작품을 만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