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파워 클래식] "오늘 엄마가 죽었다"… 카뮈는 그렇게 도덕과 관습에 저항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하나가 아니다. 적어도 셋, 아니 그 이상이다. 그 말은, 적어도 세 번, 아니 그 이상 만나야 비로소 본모습을 겨우 조금 볼 수 있고, 본질에 아주 조금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방인'을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막둥오라비의 다락방에서였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문고본은 잘 구워진 빵처럼 노르스름했고, 표지에는 '이방인'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다락방 창문으로 오후의 빛이 흘러들어왔고, 나는 홀린 듯 책장을 넘겼다.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첫 문장만 읽고 덮어버렸던가. 그날, 막둥오라비의 다락방에서 만난 '이방인'의 기억은 첫 문장 이외에 남아 있지 않았다. 몇 년 뒤, 나는 불문학도가 되어 다시 '이방인'을 만났다. 전에 한 번 만났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울 만큼 '이방인'은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같은 작품이 왜 그렇게 낯설고 다르게 느껴졌던 것인지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방인'을 읽고 이해하느라 몇 가지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첫 번째 관문은 첫 문장에 있었다. 열여덟 살에 맞닥트린 첫 문장,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의 '이방인'과 스물두 살에 만난 "오늘 엄마가 죽었다"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무엇이 다른가? 의문을 품고, 풀기까지 또 한 세월이 필요했다. 최근에야 무드(mood·情調)에 해법의 열쇠가 있음을 깨달았다. 한 작품이 거느린 무드란 작가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인 동시에 작가가 창조한 작중 인물에게 갖는 태도, 또 작중 인물이 세상과 인간에게 갖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뫼르소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의식, 사람들과 맺는 관계는 모두 이 무드와 관계가 있는 것이다. 뫼르소가 늘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중얼거리는 것처럼 '이방인'을 둘러싸고 있는 독특한 무드를 놓치면 아무리 찬사에 휩싸여 있어도 이해는커녕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열여덟 살의 나처럼.

세상사 모든 것이 시시해지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상이 어느 순간 나와 분리된 채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고, 나는 그저 구경꾼인 양 나와 세계 속에 낯설게 놓여 있음을, 심지어 내 삶조차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섬뜩하게 깨닫는 순간이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부조리한 인간 조건을 최초로 자각한 사람이 '이방인'(1942)의 주인공 뫼르소이다. 소설 본연의 임무는 새로운 인간형의 창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카뮈는 인류 역사상 한 번도 본 적 없는 뫼르소라는 새로운 인간을 빚어낸 창조자이다.

어미의 장례식을 치르자마자 여자와 만나 잠을 자고, 그럴 만한 특별한 원한이 없는 아랍인과 시비 끝에 총으로 쏴 살인을 하고, 재판정에서 동기를 묻자 단순히 정수리 위의 '태양' 때문이라고 말하고, 사형을 선고 받고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회개는 커녕 사형날 많은 사람이 구경하러 와서 심하게 야유하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멀쩡하게 말하는 사내. 이 사내의 출현은 문학·심리학·사회학·정신분석학계는 물론 전 세계 언론과 독자들을 동요시켰다.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줄거리만으로 볼 때에는 가히 희대의 성격파탄자(사이코패스)라고 할 만한 뫼르소가 부조리의 반항자로 세기를 넘어 불멸의 생명력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라는 첫 번째 관문에 이은 두 번째 관문은 그의 문장이다. 카뮈는 미문(美文)의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세계적인 알베르 카뮈 전문가인 김화영은 "봄철에는 티파사에 신들이 내려와 산다…"로 시작되는 '결혼' 첫 문장에 매료되어 카뮈 연구를 시작했고, 평생을 바쳤음을 토로했다. 나 또한, 카뮈로부터 눈앞에 있으나 그것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잠시 멈춰 서서 응시한 채 기다려야 한다는 법을 배웠다. 그것이야말로 삶의 이치이자 소설의 핵심인 현현(顯現·이피퍼니)임을 깨우쳤다.

이러한 세상의 가치, 미의 실현은 결국 문장에 달려 있다. 아무리 대단한 사상이나 혁명적인 인물을 제시하더라도 문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맹탕 헛것이 되는 것이다. 뫼르소라는 인간이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패륜아에 그치지 않고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는 새로운 인간형으로 거듭날 수 있는 데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안고 바닥 끝까지 내려가 본 카뮈의 정제된 문장이 결정적이다.

프로방스에 며칠 체류하던 지난해 겨울, 잠에서 깨어나 돌연 뤼베롱 산간의 고원 마을 루르마랭을 찾아간 것은 인류사에 뫼르소라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탄생시킨 창조자의 현재를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충동 때문이었다. 사이프러스 나무가 고요히 옆을 지키고 서 있는 카뮈의 무덤 앞에서 나는 뫼르소처럼 "이런 행동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저만치 놓고 간 붉은 열매를 꽃다발인 양 묘석 아래 깊숙이 꽂고 있었다. 화강암을 깎아 만든 네모난 묘석 위, 정오의 태양이 ALBERT CAMUS라는 글자에 내리쬐고 있었다.

[140자 트윗 독후감]

"뫼르소는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사춘기 땐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었고, 쉰을 넘어선 지금은 사형선고마저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그에게 한없는 연민을 느낀다." (트윗 응모자 하진솔 @hacolom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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