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학문도, 정신도… 단재 후예 길러낼게요"

단재 신채호(申采浩·1880~1936) 선생의 고향인 충북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 고드미마을에 자라나는 세대가 한문을 배우면서 애국애족 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전통 서당이 들어섰다.

충북지역 전·현직 교수 7명은 이 마을 영농조합법인이 운영하는 전통문화체험장에 '고드미 서당'을 마련, 지난 25일 문을 열었다.

단재 연구가인 박정규(67) 전 청주대 교수가 대표 훈장을 맡고 손홍열(73)·이성(70)·황청일(69) 전 청주대 교수와 김기정(71) 전 서원대 교수가 훈장을 맡는다. 이순익(52) 주성대 교수가 학감 역할을 맡고, 박 전 교수의 부인인 강혜숙(65) 전 청주대 교수도 음악을 통해 천자문을 가르친다.

박 전 교수는 단재에 심취해 그와 관련한 책과 글, 행적 등을 연구해 왔으며 황 전 교수, 이 교수 등은 이 마을에 살고 있다. 박 전 교수는 "은퇴한 인문학 노교수들이 학문을 통해 어제의 단재와 미래의 단재들을 잇고 싶어 서당을 열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누구나 서당 학동이 될 수 있다. 서당의 기본 과목은 '천자문'이다. 훈장들이 돌아가며 천자문을 가르치고 천자문을 떼면 '사서삼경''통감절요' '고문진보' 등으로 수준을 높여나갈 계획이다.

박 전 교수는 별도의 천자문 교육자료까지 만들었다. 수첩 크기로 접을 수 있는 종이 한 장에 천자문을 모두 실어놓은 이 자료는 천자문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장점을 갖추고 있다. 훈과 음을 달고 8자씩 해석을 해놓았다. 중국어 간체자로 천자문을 소개하고 발음기호도 달아놓았다. 박 전 교수는 "손에 지니고 다니면서 언제든지 천자문을 펴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며 "특허를 내도 될 정도로 실용적"이라고 말했다.

훈장들은 이곳을 찾는 학생들에게 천자문을 집중 교육해 마치 구구단이나 불경을 외우듯이 8분 안에 천자문을 낭독하도록 훈련시킬 계획이다. 천자문은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일본, 베트남 등 한자문화권에서 오랜 세월 한문교육 기초교재로 활용된 책이지만 젊은 세대가 접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서당 측은 이 같은 점을 고려해 동요나 가요 등에 가사처럼 붙여 천자문을 외우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서당은 여름방학 때는 1박2일, 2박3일, 일주일 등 단기과정으로 운영되고, 방학이 끝나면 연중 글방 체제로 바뀐다. 한문교육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재가 28세 때 편집인 겸 주필로 제작에 참여한 월간잡지 '가정교육'을 통해 주장했던 전통 예의범절도 함께 가르친다. 유기농법을 하고 있는 마을과 연계해 농사·공예·민속놀이 체험 등도 곁들인다.

서당 옆에는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독립운동가, 역사학자, 언론인 등으로 치열한 삶을 살았던 단재의 일생을 소개하는 기념관과 사당, 묘소 등이 자리 잡고 있어 학동들에게 훌륭한 역사교육장이 될 전망이다. 서당이 문을 연 25일 초·중교생 16명이 첫 신입생으로 등록했다.

고드미마을에 서당이 들어선 것은 또 다른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1867년 문과에 급제해 사간원 정언(정6품)을 지낸 단재의 할아버지 신성우 선생은 1885년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면서 이 마을에 서당을 개설해 20여년 동안 운영했다. 1900년대 초 맥이 끊긴 후 한 세기를 뛰어넘어 이번에 다시 서당이 생긴 셈이다. 대전에서 출생해 고드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낸 단재는 이 서당에서 학문을 익혔다. 서당 공부를 한 지 1년도 채 안 된 여섯 살 때 한시를 지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는 일화도 전해오고 있다.

1931년 조선일보 학예란에 연재된 것을 토대로 사후에 간행된 '조선상고사'의 저자로 유명한 역사학자이자 언론인, 독립운동가였던 단재 선생은 일제에 체포돼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서 순국했다.

박 전 교수는 "학생들이 글 공부와 함께 단재의 얼과 민족정신을 배우는 값진 기회가 될 것"이라며 "일반인들을 위한 과정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www.godmee.com, (043)298-25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