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64] "향수란 상대를 흥분식히기 위한 것"

"귀를 위하야 음악이 잇고, 눈을 위하야 미술이 잇다면, 코를 위하야 이것이 잇다."

1925년 한여름 조선일보 '가뎡부인' 페이지에 모던 걸들의 새로운 필수품 하나가 머리기사로 소개됐다. 물 건너온 서양식 향수(香水)였다. 향수의 성분 등을 설명한 이 기사는 향수 뿌리기에 관해 "상대자를 흥분식히기 위한" 것이며 "다른 동물에게서 차저볼 수 업는 사람의 탁월한 권리"라고 썼다(1925년 8월 22일자). 같은 해 2월 8일자에는 조선일보 지면에 처음으로 향수 광고도 등장했다. "一滴(일적·한 방울) 바르는 거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것과 心(심)의 만족을 득할 수 있다"는 '오리지나루' 향수였다.

당시 기사에서 "향수는 땀 냄새나 살 냄새를 감추는 것이 목뎍"이라고 했으며(1929년 7월 9일자), 향수를 바를 땐 "가까이 서면 냄새가 지독하다고 하리만큼 강한 것을 선택하라"고 썼다(1934년 4월 10일자). 향수에 관한 기사도 땀이 많은 한여름에 주로 등장했다(1925년 8월, 1926년 8월, 1929년 7월). 1935년에 이르면 "조선서도 향수를 잘 쓰고 못 쓰는 것이 미인의 한 조건처럼 되야가고"(1935년 8월 21일자) 있었다. '라벤다' '짜스민' 등 서양의 매혹적 향기들은 "마치 월야(月夜)의 쎄레나데 그것처럼 우리의 심혼(心魂)을 끗업는 황홀경으로 끌어드리랴 합니다"라는 감탄을 내뱉게 했다(1936년 6월 16일자).

그러나 향수는 엄청나게 비쌌다. 이른바 '전시(戰時)체제'로 물자가 부족했던 1930년대 후반의 향수 가격은 "제일 고급이라고 하는 것은 샤넬의 제 오번이 일백삼십원(약 260만원)…개랑의 류-라는 불란서 향수가 백원(약 200만원), 밋코라는 향수가 팔십원(약 160만원)"(1937년 9월 28일자)까지 폭등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화장품 광고는 한 달에 서너 번씩 보이는데, 향수는 일 년에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씩만 광고했다. 광고 문구도 '모든 것을 초월하야 고상(高尙)함'(1926년 12월 21일)을 내세우며 부유층의 연말 선물로 권했다. 향수가 너무 비싸니 향료·알코올 등을 사다가 만들어 써 보라는 기사가 가정면에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재스민 향의 경우 25g에 45원(약 90만원)이나 됐으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1938년 7월 8일자).

그래도 '신식 멋장이'들에게 향수란 포기할 수 없는 신천지였다. 1920년대 남녀 고등학생의 용돈 씀씀이를 취재한 기사는 "녀학생은…편지 부치는 비용과 향수갑만은 남학생보다 훨씬 만이 든다"고 했다(1926년 3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