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부천] 야학 50년… "2000명에 꿈과 희망을"

"70년도에 학교가 어려워 문을 닫을 뻔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한동안 천막을 치고 공부하며 썼던 호야등(남포등) 중 하나예요."

지난 24일은 인천의 야학(夜學)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인향야학이 개교 50주년을 맞은 날이었다.

인천 중구 송월동 제물포고 후문 근처에 있는 이 학교에서 만난 김형중 교장은 교무실 책장 위쪽에서 20㎝ 정도 크기의 조그맣고 낡은 등을 하나 내려 보여줬다.

"그때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보관하고 있는 거예요. 당시 우리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갖고 있던 마음, '어떤 상황에서도 너희들 곁에 있겠다'고 했던 그 마음의 표현이죠."

인향야학은 1962년 중구 도원동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당시 동장이 글 모르는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자는 뜻에서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다지 활발하게 운영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66년 김 교장이 거의 문을 닫을 처지였던 이 학교를 이어받아 남구 용현2동 재건회관에서 새롭게 시작했다. 적십자사에 있던 한 선배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

교실도, 학습교재도 어느 하나 변변치 못한 여건이었지만 가난 때문에 정규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계속 몰려들었다.

학교 운영은 힘들다 못해 처절했다. 학교 건물을 찾아 지금까지 이사다닌 것만 11번. 베니어판을 쪼개 칠판을 삼고, 전기가 안 들어오는 건물을 빌려 절에서 불공을 하고 남은 양초를 모아다 불을 밝히며 4년여 동안 공부하기도 했다. 그나마 건물이 없어 천막생활을 2년 동안 한 적도 있고, 한 정비공장의 2층을 빌려 교실로 쓰다 공장이 부도가 나서 내쫓기기도 했다.

1970년 학교 건물이 하나 있었으면 하고 고민할 때 그 이전 야학에 영어 교사로 나왔던 미군 두 사람이 도와주겠다고 나선 일이 있었다.

부대에 있는 철근과 시멘트 등의 자재를 지원할 테니 학교를 지으라고 한 것이다. 당시 빈터가 많았던 학익동에 어렵게 자리를 구해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재가 있어도 돈이 없어 건물은 짓다 말다 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겨울 어느 날 부실하게 골조만 올라가던 학교 건물이 강한 바람에 모두 무너져 내렸다.

"이제 더는 희망이 없다 싶었어요. 그래서 선생님들 다 내보내고 정리하려고 했죠. 그때 학생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자재들을 끌어 모으면서 저보고 '선생님도 떠나실거죠' 하고 묻는데 그 눈빛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어요. 한겨울에 구두닦이를 하느라 다 터져 피가 나고 시커멓게 된 손으로 자기들이 모아온 돈이니 학교 짓는 데 써달라며 동전이랑 구겨진 지폐들을 내놓는데…. 전 평생 그 눈빛과 터진 손들을 잊지 못해요."

김 교장이 보여준 호야등은 그 뒤 다시 학교 건물을 찾을 때까지 천막 생활을 할 때 썼던 것이었다.

그렇게 넘어온 50여년 동안 2000여명의 학생과 900여명의 선생님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이제는 그들이 후원회를 만들어 학교를 돕는다. 누군가 취직을 했다고 찾아와 삼겹살이라도 사는 날이면 학교는 온통 잔치판이 되고, 집안에 일이 있을 때는 두루 모여 한 가족처럼 돕는다.

"예전엔 가난하고 어려워 학교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야학을 찾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의무교육제도도 있고 해서 그럴 일은 거의 없죠. 요즘은 젊은 시절 배우지 못한 50~60대들이 많이 와요. 야학의 성격이 바뀌었다고 할까…."

지금 학생은 62명. 대학생·현직 교사 등 21명의 교사가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수업은 월~금요일 6시 30분부터 4시간씩 한다. 초·중·고 모두 1년 과정으로, 검정고시에 대비한다. 수업료는 무료고, 2교시가 끝나면 라면이나 김치찌개 등을 끓여 저녁식사를 한다.

"지금 전국에 야학이 160개쯤 되는데 모두 힘들어요. 하지만 그게 야학이죠. 야학은 '정신'이에요. 더 큰 것을 바라는 건 욕심이죠."

'살아있는 야학의 전설'이라 불리는 김 교장은 관할 중구청장의 추천으로 지난 6일 대통령 포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자신이 말하는 '정신'으로서의 '순수 야학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대통령 포상을 준 것은 그만큼 야학을 인정하고 위상을 높여준 일이라 고맙게 생각해요. 한동안 때가 되면 후배에게 야학을 물려주고 떠나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이젠 시작한 사람이 끝맺음도 해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야학은 희생이고 봉사인데 그 멍에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은 책임회피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렇다고 야학이 제도권으로 들어간다면 이미 야학이 아니니까…." ☎772-4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