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마음도 힐링… 병원, 자연을 수혈받다

경기도 고양시 관동의대 명지병원 5층, 최근 문을 연 건강검진센터에 들어서면 병원에서 보기 드문 희한한 풍광이 한눈에 가득 들어온다. 초록 이끼가 붙어 있는 벽천에서 시원한 물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수는 실내 정원의 물양귀비와 속새 사이를 휘돌다가 바닥에 길게 깔린 작은 개울로 흐른다.짙은 연두색의 메타세쿼이아가 나무 숲을 이룬 정원에서는 카나리아들이 쉴 새 없이 지저귄다. 영락없는 식물원이다. 녹색 공간 사이사이에 혈액 검사실이 있고, 건강 상담실이 자리 잡고, 유방 촬영실과 엑스레이실 등이 숨어 있다. "여기가 병원이야? 숲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곳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40세 이상 국민에게 제공하는 암(癌) 검진이 이뤄지는 곳이다. 660㎡(200평) 규모의 검진센터는 단순히 인테리어 목적으로 나무나 돌을 심어놓은 것이 아니라, 환자들에게 치유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일부러 숲을 조성했다. 그래서 검진센터 이름도 '숲 마루'다. 환자들이 검사실을 옮겨 다니기 위해 화산석이 깔린 편백나무 '숲길'을 걸으면, 그 사이에서 뿜어나오는 피톤치드를 마실 수 있어 미니 산림욕도 가능케 했다. 편백나무는 피톤치드 생산성이 좋아 면역력과 심폐기능 향상에 도움을 주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후박나무, 낙우송, 배롱나무 등 모두 20여종 100여주의 치유목(木)이 환자들의 이동 공간 곳곳에 심어져 있다.

요즘 병원 인테리어 건축에 그린(Green)과 에코(Eco) 바람이 불고 있다. 병원 공간 자체를 정신적·신체적 안정을 돕는 치유 환경으로 만들려는 목적이다. '숲 마루'의 아이디어와 설계 콘셉트를 낸 사람은 외과 전문의인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 그는 "선진국 에코 병원을 참조, 한국인에게 맞는 치유 공간을 통해 환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려고 혁신적인 투자를 했다"고 했다.

이런 병원의 '그린 환경'은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싱가포르에 있는 쿠 텍 푸아트 병원은 대표적인 에코 병원으로 꼽힌다. 건물이 'ㄷ'자로 배열된 병원 중앙 공간에 숲과 대형 폭포를 만들고 새와 나비 2000여마리를 키우고 있다. 병실 환자들이 잔잔한 폭포 소리와 새 소리를 듣게 하려는 목적이다. 의료전문가들은 "환자들을 자연 속 치유 환경에 놓이도록 하는 것이 미래 병원의 주요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영국 러프버러 디자인 대학의 전규찬 교수는 "건강관리 분야에 서비스 디자인 개념이 도입되면서 환자들이 진료받을 때뿐만 아니라 병원 공간에 머무는 동안에도 힐링(healing)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병원 인테리어 건축에서 점점 보편화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초 개원한 대전시 유성 선병원 국제검진센터도 에코 병원 개념으로 지어졌다. 여기에는 세계적인 병원 건축 전문 회사 'HDR 아키텍처'가 참여했다. 기존의 병원 건물은 으레 네모반듯해 딱딱함과 긴장감을 주는 데 반해, 이곳은 천장이 위로 치솟은 알파벳 A자형의 사다리꼴로 돼 있다. 마치 검진센터가 하늘을 향해 솟은 느낌이다. 천장을 모두 투명 유리로 장식해 1박 2일 코스의 숙박 검진을 받는 환자들이 병실 침대에 누워서도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게 했다. 그러면서 간호사 업무 공간(스테이션)을 A자 건물 중앙에 배치해 의료진이 전 병실을 지켜볼 수 있다. 또 병원과 닿아 있는 야산과 공원을 활용해 환자들이 환자복을 입은 채 숲 속 산책로를 걸을 수 있게 했다. 선병원 선승훈 의료원장은 "에코 환경은 환자들의 심리적 안정감을 유도해 혈압을 떨어뜨리고, 맥박을 늦추며, 스트레스를 낮춘다"며 "앞으로 병원은 의료진과 장비의 우수함, 친절 서비스를 넘어 어떤 치유 환경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