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폭염에 농촌노인 사망 잇달아… '올빼미 농부' 급증

전국적으로 폭염이 계속되면서 논밭 일을 해야 하는 농촌 노인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일부 노년층은 더위를 피해 새벽과 한밤중에만 일하며 '올빼미 농부'로 지내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올해 들어 1일 현재까지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사망자는 7명이었고, 이 중 6명이 70세 이상 고령자였다. 전국에 폭염 특보가 내려진 지난달 24일부터 9일 동안 사망한 70세 이상 농부만 4명이었다. 올 들어 폭염으로 응급실을 찾은 온열질환자 수(사망자 포함)는 410명이며, 이 가운데 60세 이상 고령자가 130명으로 31.7%를 차지했다. 특히 실외 작업장·논·밭 등에서 일하다가 실려온 환자가 171명(41.7%)이나 됐다.

◇논·밭 가는 노인 사고 잇따라

지난달 28일 낮 12시 18분쯤 전남 영광군 김모(67)씨의 집 마당에서 주인 김씨가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쓰러져 중태에 빠졌다. 쓰러지기 직전 김씨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마늘을 손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쓰러진 시각 영광군의 기온은 33.7도였다.

이보다 4일 전인 24일 오후 남 해남군 삼산면에서는 텃밭에서 일하던 이모(83)씨가 숨진 채 발견됐고, 같은 날 오후 경북 칠곡군 석적읍에선 참외 비닐하우스 안에서 참외를 따던 박모(80)씨와 부인 김모씨(77)가 동시에 쓰러져 숨졌다. 소방 당국은 "사망자 대부분이 만성질환을 가진 상태에서 뜨거운 빛(일사병)과 고온(열사병)에 노출돼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오전 7시만 돼도 일 못해"

낮 최고기온이 36.9도에 달했던 지난달 30일 오후 9시쯤 경북 성주군 선남면 한 참외 농가. 불 켜진 창고 안에서 배월선(75)씨와 며느리 백정희(53)씨가 참외 선별 작업을 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들은 참외를 이날 새벽 5시부터 6시 30분까지 따 놓았지만, 선별 작업은 밤 시간에 하고 있었다. 백씨는 "오전 7시만 되도 해가 뜨거워져 일을 못한다. 요즘 같으면 비닐하우스 내부 온도가 60도를 넘어선다"며 "예년엔 오전·오후로 나눠 일했는데, 올해는 폭염이 심해 새벽과 늦은 밤 등 캄캄할 때 일을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7시 전남 영광군 군남면 월흥리 한 토마토 농가. 땀으로 흠뻑 젖은 황용문(51)씨가 비닐하우스에서 부인과 함께 토마토를 수확하고 있었다. 황씨 역시 이른 새벽과 석양이 드리워진 오후 늦게 밭일을 한다.

황씨는 "지붕을 부직포로 덮어 그늘을 만들어도 하우스 안은 찜통"이라며 "요즘 농촌에선 해를 피해 수확을 하고, 잠자는 밤 중에 선별·포장을 해야 겨우 수확량을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령화 농촌 폭염 대책 시급

미국 하버드 의대가 370만명을 대상으로 여름 기온과 사망률을 비교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여름 기온 평균치에서 섭씨 1도가 높아졌을 때, 심근경색증과 당뇨병 사망위험도는 약 10%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국립기상연구소가 발표한 폭염 위해성 연구에서도, 폭염기간 노인 사망자 수는 섭씨 32도에서 1도가 증가할 때마다 9명씩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복지부는 전국 응급의료기관들과 함께 폭염 건강피해 감시체계를 운영하고, 폭염 피해 예방을 위해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 지원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대구 동산의료원 김대현(가정의학과) 교수는 "노인은 혈관 탄력성이 저하돼 있고 동맥경화도 진행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온변화에 적응하는 능력과 면역력이 떨어진다"며 "폭염에 노출되면 쉽게 실신하거나 사고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