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61] 아편 만연… 설사약으로 먹다 참변도

1930년 1월 8일자 조선일보 2면, 단성사 상영 영화 광고 바로 옆에 '특별한 약(藥)' 광고가 3단으로 실렸다. 모루히네(모르핀) 중독을 다스린다는 해독제 '안치모힌' 광고였다. 마약 중독자로 보이는 수척한 몰골의 사내 그림을 결들인 이 광고는 "여하한 중증(重症)도 20회 이내의 주사로 전치(全治)할 수 있다"고 선전했다. 당시 마약 중독자가 얼마나 많았으면 일간 신문에 해독제 광고가 크게 실렸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실제로 1920~1930년대 조선에서 아편(阿片) 등 마약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만연했다. 당시 조선일보 기사 중 제목에 '아편' '마약' 등이 들어간 기사는 무려 2290건이나 된다.

조선시대 말기에 들어왔다는 아편은 일제 때 점점 확산됐다. 조선총독부가 전매제를 실시해 허가받은 사람들이면 아편 원료인 양귀비를 재배하거나 '의료용' 아편을 만들수 있게 했고, 이들로부터 흘러나온 아편은 중독자들을 양산했다. 한 마을의 50여명이 무더기로 중독돼 아침 저녁으로 한집에 모여 주사를 맞는 일도 있었고(1921년 9월 30일자), 마약 단속을 맡은 일본인 경찰 간부가 아편을 흡입하다 붙잡히기까지 했다(1928년 3월 13일자). 1930년엔 전국의 아편 중독자가 2만 명에 이르자 조선일보 사설은 "추악한 인간 세상의 암흑면"이라고 개탄했다(1930년 2월 19일자).

총독부는 1935년 4월 25일 '조선마약 취체령'을 발포(發布)하여 정부 외에는 마약을 제조·수입할 수 없게 하는 등 규제에 나서기도 했다(1935년 4월 26일자). 그러나 실제 단속은 느슨했다. "총독부가 조선인 중 유식층(有識層)과 유산층(有産層)을 되도록 많이 폐인으로 만들어 반일(反日)인구를 감소시키려고 아편의 생산과 소비를 실제로는 방임했다"는 연구도 있다(임병윤 '아편과 식민지 경영').

아편이 흔하다 보니 가정에서 질병 치료에 함부로 쓰다가 변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6월 탈북 여성들이 "북한에선 아편을 설사 등에 치료제로 쓴다"고 밝혀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이런 황당한 민간요법도 1920년대에 시작됐다. 1929년 조선일보는 '설사에 아편 잘못 먹으면 큰일'이라는 기사를 실었고(1929년 7월 28일자), 설사를 하는 어린이에게 아편을 먹였다가 숨졌다는 소식이 며칠 뒤 사회면에 실렸다(1929년 7월 31일자).

결국 광복 후 1960년대의 강력한 단속 등을 거쳐서야 이 땅에서 마약중독자는 극소수가 됐다. 국제사회에서 '마약 청정국'으로 분류되는 나라가 되기까지 우리는 수십 년간의 어지러운 시대를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