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닫힌 소비자 지갑… 백화점·마트 덜 가고 덜 산다

날씨는 푹푹 찌지만 소비 심리는 꽁꽁 얼었다.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물품이 10%나 줄었고, 백화점은 한 달 동안 장기 세일을 해도 매출이 제자리걸음이다. 최근 부동산시장의 침체로 자산가치가 줄어들고 소비자들이 지갑을 굳게 닫으면서 내수 경기 부진이 심화하고 있다.

◇대형마트서 구매 품목 13.4% 줄어

이마트가 자체 포인트카드 회원 780만명을 대상으로 작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간의 쇼핑 실적을 분석한 결과 1년 전(2010년 7월~2011년 6월)보다 구매 품목(종류)은 13.4%, 구매 상품 개수는 8.4%씩 줄었다. 고객 1명이 매장을 방문하는 횟수도 감소했다.

특히 냉장고·에어컨·음향기기·패션 액세서리·패션 슈즈 같은 상품군의 고객증가율이 전년보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트 관계자는 "당장 필요하지 않은 품목에 대한 소비를 줄이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쇼핑 품목의 감소는 상위층 고객에게서 더 큰 폭으로 나타나고 있다. 1인당 월별 구매 품목을 비교해보니 이마트 VIP 등급 고객은 지난 1월 평균 79.4개 품목을 샀지만, 6월엔 75개 품목을 사는 데 그쳤다. 일반 등급 고객은 같은 기간 30.7개에서 29.6개 품목으로 1.1개 감소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글로벌 경제 위기와 부동산 침체로 인한 자산가치 하락 등의 요인이 겹치면서 상위층 고객들이 소비 규모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 달 장기세일에도 백화점 매출 제자리

백화점 업계도 울상이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3대 백화점은 예년보다 2주 늘어난 한 달 동안의 여름 정기세일을 펼쳤지만, 매출 증가율이 1%대에 그쳤다. 롯데백화점은 올여름 정기세일(6월 29일~7월 29일) 때 매출이 지난해(6월 24일~7월 25일)보다 1.8% 늘었다. 현대백화점은 1.2%, 신세계백화점은 1.6% 각각 증가했다. 작년 여름 세일 기간 매출 증가율 9~12%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백화점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여성의류 매출이 부진했다. 롯데와 현대백화점은 각각 0.8%와 2.7%씩 줄었고, 신세계백화점은 0.3% 증가에 그쳤다.

백화점 매출 부진은 소비자들의 신용카드 사용액에서도 확인됐다. 여신금융협회는 "지난 6월 백화점의 카드 승인 실적은 작년 6월보다 18.3% 줄었다"고 밝혔다. 5월에도 19.5% 감소해 두 달 연속 20% 가까이 급감한 것이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고가 상품을 주로 취급하는 백화점이 소비위축에 따른 타격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창고형 할인점 등 신규사업 개발에 몰두

백화점과 대형마트 실적이 부진하자 유통 업체들은 신규 사업 개발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창고형 할인점이나 복합쇼핑몰 개발, 온라인몰 강화 등이 대안이다.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최근 경쟁적으로 창고형 할인점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진열대 설치비용을 줄이고 대용량 묶음상품을 주로 취급해 대형마트보다 가격을 더 낮춘 매장이다. 롯데마트는 6월 말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3만~3만5000원의 연회비를 받는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 '빅마켓' 1호점을 열었다. 2일 현재 8만6000여명의 회원을 모아 연회비로만 25억원 이상을 벌었고, 개점 한 달 만에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

비(非)회원제로 운영하는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최근 7번째 매장인 천안아산점을 열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불황기에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철저하게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한다는 계획"이라며 "모든 상품이 이마트보다 10% 정도 싸다"고 말했다. 신세계는 경기도 의왕 등에 쇼핑·엔터테인먼트·문화·레저시설 등을 두루 갖춘 교외형 복합쇼핑몰 10여곳을 만들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