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둘' 최백호, 신인 재즈 싱어로 돌아오다

1976년 데뷔한 뒤 '영일만 친구' '입영전야' '낭만에 대하여' 등 세대와 시간을 초월한 스테디셀러 노래들로 사랑받아온 가수 최백호(62). 삶의 무게를 묵직하게 담아낸 노랫말과 선율, 둔탁한 듯 깊이 있는 목소리를 앞세워 오랫동안 '성인 가요'의 대표 주자로 꼽혔던 그가 데뷔 36년 만에 처음으로 '재즈 싱어'로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오는 9월 9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재즈 피아니스트 한충완이 이끄는 콰르텟(사중주단)과 함께 재즈 색채 물씬한 단독 콘서트를 여는 것. 이번 공연에서 그는 자신의 대표곡과 애창가요·팝송 등을 이국적이고 자유분방한 재즈로 변주해 들려줄 예정. 2일 서울 여의도의 카페에서 만난 그의 얼굴은 설렘과 긴장감으로 잔뜩 상기돼 있었다.

"'대중가요 하다가 재즈에 빠지면 사람 망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그만큼 음악적으로 중독성이 강하단 얘기죠. 재즈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의 일생을 그린 영화 '버드(1988년)'를 인상깊게 보고,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 등 거장들의 음반을 꾸준히 사서 들었지만 그저 청취자 수준이었죠. 대중음악인들이 늘 흥미를 갖지만 좀처럼 접근이 어려운 게 재즈예요. 그래서 걱정입니다. 재즈라는 이름에 흠집을 내는 건 아닌가 싶어서요."

'소극적 애호인' 수준에 머물던 그가 재즈 스타일의 공연을 하기로 마음먹은 결정적 계기는 지난 4월 관람했던 '재즈 대모' 보컬리스트 박성연을 위한 자선 헌정 공연이었다. 한국 재즈의 산실인 유서깊은 재즈클럽 '야누스'가 운영난에 허덕이고, 운영자 박성연의 건강도 악화하자 후배 재즈 뮤지션들이 총출동해 박성연과 합동무대를 가진 뜻깊은 자리였다. "대선배는 경제적으로 어려울 각오를 하고 당당하게 자기 음악을 지켜가고 있고, 후배들은 그를 위해 바쁜 일정을 제쳐두고 모였습니다. 보컬과 반주는 서로가 돋보이도록 배려하며 완벽한 조화를 이뤘죠. 나와 차원이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 같았어요. 어떻게 하면 저런 음악을 할 수 있는지 비결을 알고 싶어 뒤풀이에 쫓아가서 술을 진탕 마셨죠(웃음)."

'예순둘'은 앞날을 계획한다기보다 그간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보는 게 더욱 익숙할 나이다. 그러나 최백호는 이번 공연 말고도 열정적 음악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기타리스트 박주원의 앨범 수록곡 '방랑자'의 보컬을 맡아 난생처음 남의 앨범에 '피처링'을 했다. 두 사람은 경북 포항에서 열리는 칠포재즈페스티벌(8월 17~19일)에도 함께 선다.

앞서 지난 4월에는 연극배우 박정자의 데뷔 50주년 기념행사에도 참석해 흥을 돋웠다. 올가을쯤 발표할 10여년 만의 정규앨범은 그동안 직접 작사·작곡해왔던 그간의 작업패턴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다른 이들로부터 받은 다양한 스타일의 노래들로만 채울 예정이다.

그는 "내가 생각해도 요즘 확실히 젊어진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목소리는 천성적인 거예요. 그래서 조용필이나 송창식처럼 빼어난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늘 부럽고, 저 자신에 대해서는 불만이었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목소리가 젊었을 때보다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낭만에 대하여'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같은 노래들은 처음보다 키(음정)를 한두 단계씩 높여 부를 수 있어요. 나이 들면 키가 내려가기 마련인데 믿기 힘들죠?" 최백호는 "열정을 가지고 꾸준히 노래한 것 말고는 딱히 비결이 없다"며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좋을 때 보다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숱한 선후배 동료 음악인들의 게스트 요청에 흔쾌히 응하는 따뜻한 인간미로 이름난 최백호. 그에게 이번 공연에 특별히 부르고 싶은 게스트가 있느냐고 묻자 나온 이름은 '국민 여동생' 아이유였다. 아이유는 얼마 전 생애 첫 단독 콘서트에서 통기타를 치며 '낭만에 대하여'를 부른 뒤 "우리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노래"라고 하며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어린 친구가 인사도 예의 바르게 잘 하고 노래도 참 잘 하던데요. 아, 그런데 그렇게 되면 나도 아이유 노래 하나 답가로 불러야 하는 거죠? 허허, 이거 고민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