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은행예금 1년짜리로?" 엄청난 비밀이…

장기(長期) 금리가 단기(短期) 금리보다 높다는 금리의 '상식'이 깨지고 있다. 만기 3년 국채금리가 만기 1주일짜리 기준금리보다 더 낮아졌고, 예금금리 경우도 만기 2년짜리 정기예금 금리와 만기 1년 정기예금 금리가 거의 같거나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전 자산 선호 현상이 심화되는 데다, 금융회사들도 장기 저금리 추세를 걱정해 만기가 긴 장기자금을 유치하기를 꺼리는 데 따른 것으로, 불황형 '금리 왜곡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예금, 1년 만기 금리가 2년 만기 금리와 차이 없어

5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7월 말 현재 신한·우리·외환·기업·산업은행의 대표적인 정기예금 상품들은 1년 만기와 2년 만기 상품에 주는 금리가 같다. 일부 은행에선 1년 예금 금리가 2년짜리보다 높은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씨티은행은 인터넷으로 1년 만기 프리스타일예금에 가입하는 고객에겐 0.2%포인트 우대금리를 준다. 연 3.22%가 기본 금리인데 우대금리를 적용받으면 3.42%를 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기 2년 예금은 인터넷으로 가입해도 우대금리가 없이 3.26%만 준다. 은행 입장에선 만기 1년이 넘는 장기 고객 유치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표 참조〉

은행들의 장기 예금 푸대접은 시중 자금이 안전한 은행 예금으로 모이는 것과 관련이 있다. 국민·신한·우리·하나·기업은행 등 5대 은행의 정기 예·적금 잔액은 지난해 말과 비교해 15조원 늘었다. 하지만 은행 입장에선 장기로 돈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다. 같은 기간 동안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2조4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은행 입장에선 2년 만기 예금에 금리를 더 주고 돈을 끌어모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A은행 관계자는 "불확실한 경기 전망이나 저금리 기조가 향후 2~3년 동안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걸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불황형 금리 왜곡 현상이란 얘기다.

◇시장금리, 한 달째 장·단기 금리 역전

지난 주말(3일) 국고채(3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0.02%포인트 떨어진 연 2.77%를 기록했다. 기준금리(3.0%)를 크게 밑돌고 있는 것이다. 금융기관 간의 초단기 거래자금인 콜금리(3.06%)보다 0.29%포인트 낮았다. 장기 채권인 국고채 금리가 단기 금리를 밑도는 금리 역전 현상은 한 달째 지속되고 있다.

통상 채권은 만기가 길면 그 안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금리가 높게 형성된다. 장기 채권금리가 단기물보다 높은 이유다. 하지만 장기 채권에 웃돈을 주지 않아도 돈들은 안전 자산이라는 이유로 국채로 몰려들고 있다.

지난달 중순 한국은행은 '장기 금리와 단기 금리의 기형적인 역전'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이유 등으로 기준 금리를 인하했지만, 금리 역전 현상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끝이 보이지 않아 안전 자산에 대한 수요는 많고, 상대적으로 고(高)금리를 주는 한국 국채에 계속 돈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도 금융연구원 자본시장실 부실장은 "장·단기 금리 역전은 예외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단기간에 해소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리 왜곡 현상, 소비·투자에 악재로 작용

지난 3일 국고채 3년·5년·10년·20년물의 금리는 모두 1998년 7월 수익률을 집계한 이후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물가 하락과 동시에 경기도 활력을 잃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투자 심리가 극도로 얼어붙어 수익은 쥐꼬리만 해도 손해 볼 가능성이 작은 안전 자산인 채권에 돈을 묻어 두자는 투자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시중 자금이 안전 자산에만 몰리는 현상이 심해지면 가계 소비는 둔화되고 기업 투자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위험과 불확실성 때문에 단기 안전 자산으로 돈이 몰리면 정작 돈이 필요한 곳에는 흘러들어가지 않게 돼 국가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