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 베트남 진출 러시… 9100만 입맛 잡는다

베트남 호찌민시(市) 까오탕 거리에 있는 파리바게뜨 '베트남 1호점'은 연일 고객들로 북적거린다. 1층 빵 매장 못지않게 2층 카페형 매장도 인기가 좋다. 삼삼오오 테이블에 앉아 베트남식 커피 '카페다'를 마시는 젊은이들, 한국식 팥빙수를 먹는 가족들 모습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올 3월 30일 개점 당시에는 매장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대기 고객이 인근 도로까지 줄을 섰다. 베트남 현지 사무소엔 빵집 가맹 문의 전화가 하루 100통 넘게 걸려왔다. 강성길 베트남 법인장은 "코코넛·망고·아보카도 등 다양한 열대 과일을 활용한 빵과 음료가 잘 팔린다"고 말했다.

식품 업계가 베트남을 '포스트 차이나(Post China) 시장'으로 주목하고 있다. 연평균 7.5%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9100만 인구의 절반이 24세 미만일 정도여서 잠재력 역시 매우 크다.

국민소득이 낮고 날씨가 더워서 고가의 가전업체나 의류업체가 진출하기 어려운 반면, 제품 단가가 낮은 식품업체는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평가다. 6일부터 한·베트남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협상이 시작돼 업계의 베트남 진출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CJ푸드빌·매일유업·오리온 등은 이미 베트남 시장에서 성공적인 결실을 거두고 있다. 이들 기업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은 '철저한 현지화'에 있다. CJ푸드빌의 베이커리 브랜드 '뚜레쥬르'는 2007년 베트남 1호점을 오픈한 이래 지난 7월 현재 18개 직영 매장을 운영 중이다. 바게뜨 빵 속에 햄과 소시지, 야채를 넣은 '반미(Banh mi)'를 주식으로 먹는 현지인들 입맛에 맞춰 '갈릭 허브 바게뜨'와 '다진 돼지고기를 넣은 빵'을 출시해 인기를 끌었다. 베트남에선 고급 과일로 통하는 딸기를 넣은 케이크도 호평을 받았다.

제품의 현지화에 그치지 않고, 베트남 시장만의 독특한 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해 '블루 오션'을 찾은 기업도 있다. 매일유업은 작년 3월 호찌민에서 '엔젤락(Angelac)' '앤젤그로우(Angelgrow)'란 분유 브랜드를 출시했다. 영·유아만 분유를 먹는 한국과는 달리, 베트남에서는 취학 연령대에 달한 아이들까지 '영양식' 개념으로 분유를 먹는 점을 노린 것이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0~3세 대상 기존 제품 외에도 산모용·아동용 등 다양한 분유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격과 품질을 강조하는 서양 기업과 달리 한국 기업 특유의 '정(情) 마케팅'도 효과적으로 통했다. 오리온은 "베트남 구멍가게에선 여러 가지 물건을 늘어놓고 파는데,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가 일으킨 모래먼지가 판매대에 쌓여 있기 일쑤"라며 "영업직원들이 걸레를 들고 다니며 매대를 닦아주자 상인들의 호감도가 급격히 높아졌다"고 말했다. 오리온 베트남 법인은 2007년 베트남에 진출한 지 5년 만인 작년에 1200억원 매출을 달성했다. 진출 10년 만에 1000억원대 매출을 달성한 중국보다 성장 속도가 더 빠르다.

최근 동남아에서 불고 있는 한류(韓流) 열풍도 한국산 식품 인기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지난해 연말 베트남 100호점을 오픈한 롯데리아의 '라이스 버거'와 '불고기 버거'는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베트남 젊은이들이 가장 즐겨 찾는 메뉴로 자리매김했다. 롯데리아 관계자는 "한국 음악과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한식을 가미한 햄버거가 호평받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