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럽더라, 젊음도 기회도"

오랜만에 서울역에 갔다. 날씨는 혼미할 정도로 더웠고, 그림보다는 팥빙수가 생각나는 오후였다. 친하게 지내는 젊은 화가 그림도 볼 겸 아시아프(ASYAAF·아시아 대학생 청년 작가 미술 축제)가 열리고 있는 구(舊)서울역사로 들어섰다. 좁은 미로와 탁 트인 홀이 번갈아 나타나는 오래된 공간은 타임머신을 탄 듯 아득한 옛날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아…, 나 자신이 청년 작가였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다. 생각해보니 예술가가 되기를 열망했던 우리는 얼마나 용감했던가? 다른 직업을 갖지 않는다면 먹고살 길이 막연했던, 너무나 많은 재능 있는 우리 시대 화가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양한 작품이 걸려있는 공간을 둘러보면서 부러운 생각과 더불어 착잡한 심경에 사로잡힌다. 부러운 건 내게도 있었던 그들의 활기찬 젊음이고, 착잡한 건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려는 낙타의 행렬을 닮은 젊은 화가들의 멀고도 먼 꿈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경쟁률 5대1을 뚫고 전시된 젊은 그들의 작품들은 이십여년 전 우리 때에 비해 첫째 다양해서 좋았다. 심사위원 중 획일화된 문화 속에서 갈증을 느끼던 바로 나와 비슷한 세대가 눈에 띄었다.

새로운 것은 곧 낡은 것이 되고,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당연한 말들이 떠올랐다. 돌아보니 빨간 딱지가 붙은 팔린 작품도 많았다. 젊은 유망주의 싹수를 알아본 눈 밝은 화랑에 발탁되면, 당분간 그들의 성공은 약속된 것이리라.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이 제 돈 들여 전시회를 열곤 하던 우리 시대에 비하면 정말 행복한 그들이다. 분명 아시아프는 젊은 작가들이 세상에 나오기 위한 등용문 역할을 해주는 이 땅의 귀한 미술 축제란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지방대학에 강의를 다닐 때 일이다. 학생들이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진땀을 뺀 기억이 난다. "선생님, 지방대학을 나와서도 화가가 될 수 있을까요?" 대학을 안 간들 화가가 될 수 없으랴? 분명 그렇게 생각하는 나이지만 대답할 때는 힘이 빠졌다. 그렇게 힘없이 묻던 젊은 그들도 이제 다 마흔 살이 넘었을 것이다. 아시아프는 지방에 있는 작가들이 서울에 진출할 기회를 준다는 것만으로도 보람 있는 미술 축제다. 아주 오래전 생전의 백남준 선생께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뉴욕에서 성공하나요?" 선생은 이렇게 답하셨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파티에 많이 가. 다음엔 다 운이야." 물론 열심히 하는 건 기본이다. 하지만 큰 성공은 운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이 나이쯤엔 다 안다. 젊은 작가들이여. 크게 성공하라.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절망하지 마라. 가난했던 이중섭과 박수근을 기억하라. 전시회는 생각보다 관람객이 많았다. 그보다 조금 전에 들른 서울역사 안의 백화점보다 훨씬 많았다.

☞‘2012 아시아프’

젊은 작가 777명의 작품 1718점을 전시·판매하는 ‘2012 아시아프’는 26일까지 1·2부로 나눠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다. 입장료는 일반 6000원, 유치원·초·중·고생 4000원. 월요일 휴관. (02)724-63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