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보자기로 세계인 매료시켜요"

"미국에서 만난 작가가 얇은 한복 옷감으로 제가 만든 보자기 장식을 보더니 '헝겊과 공기로 만든 예술품'이라고 칭찬하더라고요.우리는 너무 익숙해서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르지만, 밖에선 우리 전통 보자기의 멋과 창의성에 감탄합니다."

보자기예술가 겸 큐레이터 이정희(67)씨는 미국의 유명 예술대학인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스쿨(RISD)에서 13년째 겨울학기마다 한국의 전통 보자기를 소개하고 있다. 패션, 섬유예술뿐 아니라 건축, 공업디자인 등 각 분야 학생들이 6주간의 집중강의와 실습에 참여한다. 2007년엔 세계적 첼리스트 요요마가 이끄는 실크로드 앙상블과 한 학기 동안 공동 작업을 했다. 학생들은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진 인디고 블루 색깔의 대형 보자기를 만들고, 요요마의 실크로드 앙상블은 거기에 맞는 음악을 만드는 식이었다. 요요마의 실크로드 앙상블의 공연이 열릴 때, 극장 무대를 장식한 것도 이 대형 보자기였다.

"우리 전통 보자기를 소개하면,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옷이나 액세서리는 물론 무대 세트 같은 곳에 응용해서 금방 작품을 만들어요. 한번은 워싱턴에서 워크숍을 가졌는데, 다음 날 수강생이 헝겊으로 장식한 귀고리를 하고 나왔습니다. 이러다간 우리 보자기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서구인들이 다 가져갈 것 같아요."

이씨는 우리 전통 보자기를 서구에 알리는 데 앞장서온 예술가다. 2001년엔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박물관에서 보자기를 활용한 의상으로 단독 전시를 가졌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들만 초청받는 자리였다. 그의 작품은 미국 피버디 에섹스 박물관 등 유수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작년 6월엔 샌프란시스코 공예민속박물관에서 보자기를 주제로 한 전시회를 기획, 4개월간 전시를 이끌었다.

홍익대에서 가구디자인을 공부한 이씨는 결혼 후 2남1녀를 키우면서 전업주부로 살다 서른여덟에 모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1990년대 초 풀브라이트 교환교수로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가르치면서 우리 보자기를 서구에 알리는 데 나섰다. 이씨는 "우리 전통 보자기가 마침 시대 흐름과 잘 맞아떨어졌다"고 말한다.

"못쓰는 헝겊을 재활용하는 보자기는 리사이클링과 환경을 중요시하는 요즘 예술계의 화두와 어울렸어요. 대량으로 만든 공장 제품보다 자기 손으로 만든 물건에 보다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유행과도 일치하고요."

이정희씨는 우리 전통 보자기를 소개하고 활용 방안을 알릴 목적으로 '2012 국제 보자기포럼'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11일부터 26일까지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인마을 아트팩토리 등 6곳에서 세계 12개국 작가 150여명이 참여한 보자기 전시회가 열린다. 22일부터 닷새간 헤이리 예술인마을에선 세계 작가들의 강연과 워크숍도 열린다.

"인사동에 나가 보면, 우리 전통 상품은 거의 없고, 중국산이 대부분입니다. 전통 보자기는 세계에 내놓을 만한 국가 브랜드가 될 수 있어요. 옷이나 스카프, 벽 장식, 컵 받침 등 보자기를 활용해 만들 수 있는 상품이 무궁무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