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위해 다 거는 의사… 연기로 살려냈죠

어떤 환자든 무조건 살려낼 것 같은 의사가 있다. 병원 내 정치 싸움 대신 24시간 환자만 생각하는 의사, 다른 의사들에게 '봉' 취급을 당해도, 어찌 됐건 환자만 살려내면 될 뿐이라는 의사.

배우 이성민(44)이 MBC 월화 드라마 '골든 타임'에서 연기하는 의사 최인혁의 모습이다. 너무 완벽하고 이상적인 의사 캐릭터가 현실감 있게 땅에 발을 붙이고 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성민의 연기력 덕분이다.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후 드라마 '파스타' '브레인' '더킹 투하츠' 등에서 악역과 선한 역을 오가며 다양한 연기를 선보인 그가 처음으로 묵직한 주연을 맡으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인터넷 게시판 등에는 그의 강렬한 연기를 호평하며 '인혁앓이'에 빠진 사람이 부지기수다.

이성민은 8일 수화기 너머에서 "처음으로 받는 큰 주목에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감독님이 캐스팅을 제의하면서 걱정됐는지 '멋있을 수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자신 없는데 한번 해볼게요'가 제 답이었죠. 하하."

드라마는 서로 수술을 미루다 환자가 사망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등 의료계 치부를 과감히 드러낸다. 이런 상황에서 이성민이 연기하는 의사 최인혁은 '앞뒤 가리지 않고' 환자만 생각한다.

그는 "'힘이 없고 능력 없는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어디 없을까'라는 기대감 때문에 사람들이 최인혁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생명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의사들의 진정성을 신중하게 표현하자는 사명감이 생겼다. 이렇게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촬영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또 "석해균 선장을 살린 이국종 교수나 여러 저명한 중증 외상외과의가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도 참고했다"며 "의학 드라마이다 보니 수술 장면도 많아 다른 연기보다 더 힘이 들지만, 촬영을 마치면 뭔가 한 건 한 기분"이라고 했다.

이성민은 연극 무대 출신이다. 자기소개를 시키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숫기가 없던 그는 아버지를 따라 영화를 보러 다니며 연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입시 정보를 보다가 연극영화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제가 살던 경북 영주에 극단이 있었는데 스무 살 때 대학 입시 재수를 하면서 거기에 들어갔죠. 제대 이후 대구에 가서 극단 생활을 했고, 2002년 서울 대학로로 왔어요."

그가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건 39세였던 2007년, 드라마 '대왕세종'에서 선비 최만리를 연기하면서다. "긴 무명 생활 동안 너무 힘들었죠. 아버지의 반대도 심했습니다. 20대 중반에 극단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연기 말고는 내가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고요. 연기에는 답이 없어 너무 어려워요. 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배우 말고 일을 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는 정직한 직업인 기술을 배울래요."

그는 개성 강한 캐릭터로 연기력을 입증해 왔다. 이성민은 "뭔가 못나면서 부족하고 빈티 나는 악당 역할을 많이 했다"며 "지방 병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는 이번 드라마는 정서상 마이너들의 이야기이다. 상대적으로 대중 앞에 많이 공개되지 않은 내가 이 드라마와 맞아 캐스팅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끝까지 고민하고 긴장감을 놓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전에 드라마 촬영 중 배우 김영옥 선생님이 계획에 없던 애드립이 나오자 NG를 내셨어요. 그러면서 '내가 아직도 멀었어' 하시더라고요. 소름이 돋았어요. 그 진지한 모습을 보고 배우로서 자세를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겼습니다."

그는 "이렇게 즐겁게 연기를 해본 적은 없다"면서도 "지금도 여전히 연기의 답을 찾고 있다"고 했다. "지금 무척 행복하지만, 내 인생의 골든타임은 연극에 빠져 거지처럼 살았던 20대 때인 것 같아요. 지금 내 모습의 바탕이 됐던 그때로 돌아간다면 정말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