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웃기는 세자빈이로소이다

그가 등장하면 객석에선 일단 웃음부터 터진다. 우아하게 걸어가다가 갑자기 뛰어올라 화톳불을 걷어차고, 질투심에 눈이 멀어 다른 여자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이미도(30)는 장규성 감독의 '나는 왕이로소이다'(8일 개봉)에서 일곱 장면에 등장했을 뿐이지만, '웃기는 세자빈'으로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영화에서 충녕대군(주지훈)의 세자빈 심씨 역을 맡은 이미도를 7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이미도는 한양대 연극영화과 재학 시절부터 단역과 조연으로 영화에 꾸준히 출연해왔다. 그의 이름을 낯설어하는 관객도 그가 맡은 배역을 기억해내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는 '발레교습소'에서 날라리 여고생, '마더'에서 흉터 있는 여고생, '오싹한 연애'에서 주인공 여리(손예진)에게 조언을 해주던 친구 유진 등 불량 학생이나 괴짜역을 주로 맡아왔다.

드세거나 독특한 성격의 역할만 맡아온 데 대해 그는 "쌍꺼풀이 없어서 그런지 인상이 좀 강해 보이는 데다, 귀엽거나 어려보이지 않아서 그런 역할을 주로 맡은 것 같다. 그래도 나이와 상관없어 보이는 얼굴이라, 여고생과 아줌마 역할을 모두 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청순가련하고 여성스럽기만 한 역할은 욕심낸 적 없어요. 재미없잖아요. 다만 평범한 여성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보여주는 역할은 해보고 싶어요."

'나는 왕이로소이다' 촬영 당시 장 감독은 이미도에게 '웃기지만 품위있는 세자빈'을 주문했다고 한다. 그는 "화롯불을 날라 차기로 넘어뜨리고, 여주인공인 이하늬씨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모습을 어떻게 품위있게 보여줄 수 있는지 고민스러웠다"며 "항상 '나는 세자빈이다'란 생각을 하면서 연기했다"고 했다. "동작 하나, 눈빛 하나도 우아하게 유지했어요. 그러다가 극악스럽게 돌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다들 웃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연극반을 거쳐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나온 그는 2004년 '발레교습소'(감독 변영주)로 영화에 데뷔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남들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잘하는 게 연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누굴 좋아할 때 이유가 있나요? 연기를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그게 불안한 이 직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이에요."

대학 졸업 후에도 그는 적게는 1년에 2~3편, 많게는 5편의 영화에서 단역이나 조연을 맡아왔다. "남들이 알아봐 주지 않아서 섭섭하지 않으냐"고 묻자 "한 계단, 한 계단을 꾹꾹 밟아 올라왔지 뛰어넘은 적은 없다. 앞으로 연기를 30년간 할 건데 처음부터 빨리 뛰면 나중에 얼마나 지치겠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이미도는 요즘 여배우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쌍꺼풀 없는 눈을 갖고 있다. 전형적인 미모(美貌)가 아니란 얘기다. "예전에 어떤 영화에서는 너무 우악스럽게 나온 걸 보고 엄마 앞에서 운 적도 있다. 나도 여배우인데, 못난 모습만 부각시켜 화면 한가득 등장한 걸 보니 속상하긴 했다"고 했다. "성형이요? 이렇게 건강한 몸을 갖고 태어났는데 왜 성형을 해야 하죠. 그리고 만날 여성스런 모습만 보여주는 여배우들은 연기 변신이 소원이라는데 전 그들이 원하는 역할을 계속 하고 있잖아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