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서울에 첫 독어학교 세운 볼얀 아시나요

6일 오후(현지시각) 독일 북쪽 발트해 우제돔(Usedom) 섬에 위치한 작은 마을 파스케의 옛 우제돔시립학교. 한국에서 독일어를 가르친 최초의 교육자 요한 볼얀(1862~1928)을 기리는 기념현판 제막식이 열렸다. 볼얀은 1898년 서울로 건너와 최초의 독일어 학교 '관립 덕어(德語·독일어)학교'를 세운 독일인이다.

제막식을 준비한 이는 독일 에르푸르트대학교 문화연구원의 질비아 브레젤 박사다. 브레젤은 "볼얀은 서울에서 21년이나 독일어를 가르치고 무속신앙·과거제도·구전문학 등 다양한 방면에 대한 저술을 남겼지만, 그의 일생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며 "볼얀 탄생 150주년을 맞아 그의 고향 우제돔에서 추모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브레젤은 '골수 한국통'이다. 고은·김광규·황동규 등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황동규 시집 '풍장'을 독일어로 번역 출간해 대산번역상을 받기도 했다. 김광규 시인 등과 친분도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레젤은 처음부터 한국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고 했다. 독문학과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1992년 연세대 강사로 부임했을 때만 해도 '가나다'도 모르는 상태였다. 브레젤은 "처음 목표는 중국과 독일의 문학을 비교·연구하는 것이었다"며 "하지만 한국인들이 독일 가곡을 독일인보다 더 잘 부르는 것을 보고 그 열린 마음에 반해 방향을 틀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어를 전혀 모른 채 한국에 와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점에서 나와 볼얀이 닮은 것 같아 연구를 시작했다"고도 했다.

브레젤은 당시 신문·서신·행정문서·사진 등을 뒤져 볼얀의 인생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브레젤에 따르면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볼얀은 본래 우제돔시립학교에서 지리학·화학·기하학 등을 가르쳤다. 모험심이 강했던 그는 영국·프랑스를 거쳐 일본에서 교편을 잡다가 당시 주일 독일대사의 권유로 한국행을 택했다.

볼얀이 세운 관립덕어학교에는 15~30세의 다양한 학생이 있었다. 여름학기가 끝나면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금시계, 은제 담배상자, 알람시계 등을 주었다. 졸업생 두 명은 베를린 주재 한국 외교관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브레젤은 "당시 덕어학교를 방문한 독일 언론인 겐테는 '독일인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독일어 문법을 한국 학생들이 이해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썼다"고 말했다. 볼얀은 1905년 을사조약 이후 학교가 폐쇄된 후에도 계속 독일어를 가르치다 1919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브레젤은 볼얀 외에도 고종의 주치의 분쉬, 군악장 엑커트, 손탁호텔 사장 손탁, 언론인 겐테 등 구한말 한국에서 활동한 독일인 10여명에 대해 연구를 해왔다. "당시 한반도에는 독일인이 20여명 있었어요. 분쉬는 한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볼얀은 후에 동생까지 데려올 정도로 한국을 사랑했지요. 특히 판소리와 북을 좋아했습니다." 브레젤은 볼얀이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제자를 길러낸 훌륭한 교육자인 동시에 당시 서구인들과 달리 우월감도 전혀 갖지 않은 개방적이고 생기 넘치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브레젤은 "지금은 한국의 판소리 심청가와 독일 문학을 비교 분석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며 "볼얀처럼 나에게도 한국은 제2의 고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