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요리사 후지모토

2010년 11월 북한은 미국 핵 전문가 지크프리드 헤커 박사를 불러들여 영변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여줬다. 외부인에 대한 첫 공개였다. 앞서 북한은 2004년 1월 사용후 연료봉 8000개를 재처리한 직후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뒤에도 그를 불러 관련 시설을 공개했다. 헤커가 북에 다녀오면 미국에선 어김없이 북한과 협상하자는 쪽과 더 압박해야 한다는 진영 사이에 논쟁이 붙었다. 헤커의 뜻과 상관없이 북한은 미국과의 '핵 거래'가 필요할 때마다 흥정을 붙이는 수단으로 그를 이용했다.

▶북한은 워낙 베일에 가린 곳이어서 미국에서도 헤커처럼 북한과 줄이 닿는 인사들이 대접을 받는다. 이들은 북한에서 보고 들은 정보를 활용해 책도 내고 정부에 자문도 한다. 뉴멕시코주지사를 지낸 빌 리처드슨도 그런 인물이다. 그는 연평 포격사태 직후 북에 다녀와서는 엉뚱하게 "북한이 연평 사건 뒤 한국군의 연평 해역 사격훈련에 보복하지 않은 것은 대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했다. 북이 원하는 말을 해야 또 북에 초청받고 그래야 계속 북한 전문가로 행세할 수 있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1988년부터 13년 동안 김정일의 요리사로 일했던 후지모토 겐지도 김정일의 사생활 정보로 몸값을 올렸다. 2003년 그는 김정은이 김정일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점쳤다. 2010년 그의 예언이 들어맞자 그가 쓴 책도 잘 팔리고 인터뷰도 밀려들었다. 일본 언론에선 "인터뷰 사례 액수에 따라 그가 털어놓는 정보의 급(級)도 달라진다"는 말이 돌았다.

▶2010년 말 후지모토와 '무료' 인터뷰를 했다. 사진을 찍으려 하자 그는 "신변 위협 때문에 얼굴이 알려지면 곤란하다"며 두건을 두르고 짙은 선글라스를 썼다. 그는 "어린 시절 김정은이 여자에 관심이 많았고 담배를 피웠고 남자다웠다"고 말했다. 곱씹어보면 결국 '지도자 자질과 배짱이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는 김정은을 꼬박꼬박 '대장'이라 불렀다. 인터뷰 끝에는 "김정은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정은 대장, 대장이 북한을 잘 다스릴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후지모토가 최근 북한에 들어가 김정은과 부인 리설주, 동생 여정을 만났다고 한다. 그의 말이 맞는다면 북한은 아직도 그를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보는 셈이다. 후지모토는 일본에 돌아와 "평양 상가마다 상품들이 넘쳐나고 시민 표정도 모두 밝았다"고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취임한 뒤 북이 많이 변했다. 모두 김정은 지도자 덕분"이라고 했다. 후지모토의 말이 계산된 것일망정 가려 들으면 북한의 현실을 되짚어볼 실마리는 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