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인문학] 그림과 글이 만나는 두물머리… 그 속에서 만난 자연의 속살

양평은 물의 고장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양수리(兩水里)에서 만나 양평의 속살을 쓰다듬어 나간다. 두물머리는 뭔가 모르게 애틋하고 잔잔하며 진진하다. 여의다 다시 만난 사람들은 알 것이다. 막막한 헤어짐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음을 말이다.

국립중앙도서관·조선일보·교보문고가 주최하는 '길 위의 인문학' 답사단이 11일 찾은 곳도 그런 강심(江心)을 온몸으로 더듬어가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양평 군립미술관 근처에서 이포보(洑) 구간의 강을 옆구리에 끼고 걸었다. 쓰르라미와 참매미 소리가 번갈아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자전거족(族)들이 쉴 새 없이 지나쳐 갔다. 강가에는 소공원과 체육시설과 전공(戰功) 기념물과 생태공원들이 있다. 자연과 인공물이 크게 버성기지 않으니 좋다.

양평이 강물을 크게 풀어 쓰는 지세(地勢)이다 보니, 화인(畵人)들이 찾아드는 십승지(十勝地)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화가 최석운의 작업실을 찾았다. 밋밋한 외양과는 달리 그의 작업실 안을 둘러본 사람들의 얼굴은 환해진다. 그림이 재밌고, 즐겁다. 최석운은 당대적 삶의 풍자와 해학을 자기 그림의 모토로 삼은 듯하다. 누군가 물었다. '왜 백자 달항아리 그림에 돼지를 올렸나요?' 화가는 일갈한다. '아무 뜻이 없다. 그냥 그렇게 해본 것이다.' 그 말이 오히려 맛있다.

다음으로 양평군 서종면 골짜기에 있는 화가 서용선의 공간을 찾았다. 베를린에서 잠시 귀국한 작가는 자신의 그림들이 지향하는 풍경의 내면(內面)을 찬찬하게 설명한다. 그의 사람이 있는 풍경 그림은 인간을 만드는 내면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지적인 사유가 배어든 그의 그림은 진지함을 요구하면서도 재미있다. 탐방단의 김효은씨는 '향후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작업계획은 없으세요?'라고 물었다. 질문이 좀 낯설다 싶었는데, '북한에 들어가서 보고 느끼고 그리고 싶다. 영영 잡혀 있을까 두렵기는 하지만…'이란 답이 돌아왔다. 인간이 처한 진실에 눈 돌리지 않으려는 작가의 노력에 모두 공감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황순원문학관이 있는 소나기마을이다. 김기택 시인의 황순원 문학의 회화성(繪��性)에 대한 강의는 잔잔하면서도 명쾌하다. 그림과 글이 만나는 두물머리, 수천 년 넘게 문학과 미술은 서로 좋아한다. 매월당 김시습의 시 중에 '계성작우(溪聲作雨)'라는 구절이 있다. 땅 위를 흐르면서도 빗소리를 부르는 것, 그 사유의 넘나들이 속에 현재적 삶의 느낌이 오롯하다. 문학관 앞마당의 소나기 분수 속에서 탐방객들은 무지개를 본다. 사람이 그 뜻을 기려 인공(人工)을 만드니 자연도 제 속의 찬란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