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세상품 막차 타자"… 즉시연금·물가債에 뭉칫돈

"예금에 넣어뒀던 10억원을 즉시연금과 물가채(물가연동국채)에 반반씩 넣어주세요."(압구정동 A사장)

지난 8일 정부의 세법 개정안 발표 이후, 자산가들이 앞으로 사라지게 될 즉시연금·물가채 같은 절세 상품을 앞다퉈 사들이고 있다. 지금 사두면 세법이 바뀌더라도 절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희귀성이 부각되면서 물건이 동나거나 가격이 오를 수 있어 선제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행에선 평소 하루에 47억원어치 정도 팔리던 즉시연금이 세법 개정안이 발표된 뒤 9~10일에는 하루 평균 200억원으로 급증했다. 이달 말까지 판매 예정이었던 푸르덴셜생명의 특판 즉시연금은 500억원 한도가 순식간에 차서 추가로 한도를 늘렸고, 삼성증권·신한금융투자 같은 증권사에도 즉시연금 가입 신청이 쏟아지고 있다.

즉시연금은 목돈을 예치하고 원금과 이자를 쪼개 매달 연금처럼 받거나 이자만 연금처럼 받고 나중에 원금을 돌려받는 상품이다. 현재는 이자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받지만, 앞으로는 이자소득세(15.4%)를 떼인다. 예컨대 즉시연금에 1억원을 맡겨 매달 35만원의 이자를 받던 가입자의 경우, 앞으로는 세금이 떼여 월 수령액이 29만원으로 줄어든다. 다만 계약을 10년 이상 유지하면 10년 후 발생하는 이자분에 대해서는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정부가 그동안 과세를 면제해 줬던 '원금 상승분'에 대해서도 과세하겠다고 밝힌 물가채는 9~10일 '사자'는 수요가 늘면서 이틀 새 수익률이 0.1% 이상 떨어졌다. 채권값은 그만큼 올랐다는 의미다. 물가채는 정부가 발표하는 물가지수에 연동해 원금이 불어나는데, 원금 상승분에 대해서는 따로 세금을 매기지 않는 데다 분리과세 혜택이 있기 때문에 거액 자산가들의 절세 수단으로 각광 받아 왔다.

김종석 우리투자증권 부장은 "부자 증세안의 뚜껑이 열리자 그동안 절세상품 가입을 망설이던 고객들이 대거 뭉칫돈을 싸들고 오기 시작했다"면서 "특히 즉시연금의 경우 과세 적용시기가 시행령으로 정하는 것이어서 당장 다음 달이라도 없어질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가입을 서두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즉시연금은 시행령 개정 사안이긴 하지만, 다른 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한 후인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세제 개편안 후폭풍 생각보다 거세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의 세제 개편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여파가 생각보다 클 수 있다고 내다본다.

문승현 한국투자증권 상품전략부장은 "과거 부동산 자산을 많이 보유하던 사람들이 집값 상승 기대감이 사라지자 처분해서 현금화한 경우가 많다"면서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4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내려가면 정부가 추정한 약 3만명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새로 과세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규 국민은행 강남스타PB센터장은 "월 1000만원 안팎 월세를 받는 임대사업자 등 새로 종합과세 장벽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자산가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라며 "아직 남아 있는 절세 상품에 최대한 많이 가입해 과세 구간에서 빠져보겠다는 수요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PB팀장은 "주식과 부동산 침체로 손해가 막심한 상황에서 세금 폭탄까지 맞게 된다면 일부 고객들은 이민 가야 되느냐는 말까지 한다"고 전했다.

이번 세제 개편으로 중산층 은퇴자들이 큰 타격을 받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퇴 후 일자리와 소득이 없어 이자 소득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금리가 낮아 이자 소득이 변변치 않은 데다 각종 세제 혜택마저 사라져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편 일부 절세 상품의 절세 혜택이 장차 사라진다는 이유만으로 잘 따져보지도 않고 가입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전진희 미래에셋증권 지점장은 "즉시연금의 경우 앞으로 저금리가 지속되면 예상보다 낮은 수익만 받을 수 있고 일부 상품은 중도 해지가 불가능하다는 '유동성 위험'도 있다"면서 "브라질국채나 인프라펀드와 같은 다른 절세 대안도 있는데 앞으로 절판된다고 해서 무턱대고 가입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