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은행·카드사 VVIP 퍼주기 실태 점검"

2009년 5월 출시된 A카드사의 한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최상류층 고객) 신용카드는 연회비가 100만원에 달하며 회원 수가 1000명에 불과하다. 이 카드는 아예 처음부터 적자를 예상하고 회원을 모집했다. 회사 내부 자료에 따르면 출시 전 예상한 이 카드의 연간 신용 판매 이익은 13억7400만원인데, 특급호텔 음식점 할인 등 부가 서비스 비용은 18억4800만원에 달해 4억7400만원의 영업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고 돼 있다. 실제 손실 폭은 이보다 더 컸다. 발매 2년차인 2010년 6억5000만원을 손해 봤고, 지난해에는 부가 서비스 제공 비용이 41억원에 달해 영업 손실이 13억7000만원에 달했다.

연회비 200만원인 B카드사 VVIP카드 회원은 매달 평균 800만원을 카드로 결제한다. 카드사는 가맹점 수수료로 매달 16만원(카드 결제액의 2%) 정도를 챙긴다. 이 가운데 7만~8만원은 항공권 마일리지 적립, 항공권 좌석 승급 같은 부가 서비스 마케팅 비용으로 들어간다.

결국 회원 1명의 카드 사용에 따른 카드사의 수입은 연간 90만원에 불과하고 연회비를 합쳐도 290만원 정도인데 반해 각종 부가 서비스 제공에 들어가는 비용은 연 400만원에 이른다. 예컨대 VVIP 회원이 항공권 좌석 승급(업그레이드) 서비스를 활용, 비즈니스석에서 일등석으로 올릴 경우(서울~미국 뉴욕행 항공편 기준) 좌석 승급 비용이 500만원에 이른다. 항공사와 별도 계약을 맺어 좌석 승급 비용을 할인받기도 하지만, 비용의 30%(약 150만원) 이상은 카드사가 부담한다.

문제는 카드사들이 VVIP 영업에서 발생한 손실을 연 20%대 고금리의 현금 대출 수익으로 메운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서민층에 대한 고금리 대출로 번 돈을 초우량 고객에게 퍼준다고도 볼 수 있다.

금융감독원은 이런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금융회사의 VVIP 영업에 대한 실태 점검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12일 밝혔다.

카드사의 VVIP 카드는 물론 은행·증권사의 PB(프라이빗 뱅킹) 영업도 점검 대상이다. PB 영업의 경우 해당 지점의 인테리어 비용, 세무·부동산 상담 등 일반 고객에게는 제공하지 않는 특별 서비스를 위한 인력 채용 등으로 영업 비용이 과도하게 높아지는 것이 아닌지 점검할 에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VVIP 카드의 경우 현재 상태로는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이고, 은행과 증권사의 PB 지점 영업도 수익에 비해 지점 운영비 등 경비가 과도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VVIP 마케팅으로 통칭되는 금융권의 고액 자산가 특별 서비스가 과다한 영업 비용을 일반 고객에게 전가하고 있는지 등을 들여다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감사원은 지난 7월 금융 감독 당국에 대한 감사에서 "카드사가 마케팅 비용을 과다하게 지출함으로써 이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카드론 수수료율을 높이는 등 비용을 전가할 우려가 있다"며 금융감독원에 과도한 부가 서비스 제공과 관련해 카드 상품 수익성 분석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권고했었다.

감사원이 발매한 뒤 2년이 지난 501개의 신용카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영업 손실이 발생한 카드의 숫자와 손실 금액이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다. 2009년에는 40개에 253억원이었는데, 지난해에는 55개에 1041억원에 달했다.

금융회사가 손실을 감수하고 VVIP 마케팅에 나서는 것은 유명 인사와 고소득자 등을 회원으로 확보해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면서 '회사가 믿을 만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이다. 또 신용등급 7등급 미만의 저신용자에게 카드 발급이 중단되고, 카드 수수료율이 인하되는 가운데 카드사가 VVIP 카드로 새 시장을 열어보려는 의도도 있다. 따라서 금융 당국이 VVIP 마케팅을 감시하고 규제할 경우 자유로워야 할 기업의 마케팅 행위를 정부가 규제한다는 논란이 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