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가뭄에 배추파동 조짐… 김치 담그기 무섭다

13일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6리. 해발 700m 정도 높이의 평지에 위치한 3300여㎡(1000여평)의 밭에는 잎이 시들어 땅에 주저앉은 고랭지 배추들이 즐비했다. 대관령 배추는 해발 고도가 높은 선선한 곳에서 재배해 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좋아 인기를 끌어왔다. 올해는 사정이 좋지 않다. 배추 농사를 짓는 이정길(50)씨는 "올해 폭염에 가뭄이 30일 이상 지속되면서 배추들이 잘 자라지 못하고 시들어 버렸다"며 "수확량이 1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배추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새우젓·고추·마늘·생강 등 김치에 들어가는 양념류 가격도 올라 김치 담그기가 부담스럽게 됐다. 고랭지 배추에 이어 가을과 겨울 배추 생산량도 평년보다 줄어들어 올해도 '배추 파동'이 닥치지 않을까 업계가 우려하고 있다.

대관령의 산비탈에 위치한 또 다른 밭도 속이 까맣게 썩어버리거나 잎이 물러서 주저앉아버리는 '무름병'에 걸린 배추들이 뽑히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농민 이정길씨는 "배추는 25~28도 온도에서 잘 자라는데 올해는 대관령도 30도를 웃도는 더위가 계속되면서 뿌리가 썩어버렸다"며 "비가 30일 이상 안 오면서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지름 48㎝ 정도의 크기로 자라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고랭지 배추 출하가 줄어들면서 안정세를 보이던 배추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7월 말까지 배추 가격(10㎏ 기준)은 평년 수준인 6000원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폭염에 가뭄이 겹치면서 생산량의 20~30% 정도가 줄자 가격이 급등했다. 13일에는 1만1950원에 거래돼 한 달도 안 돼 가격이 두 배가량 올랐다.

소매 가격도 올랐다. 지난달 재래시장에서 1포기에 3000원 하던 배추가 이달에는 4000원에 팔린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주말에 비가 왔지만, 배추의 뿌리가 썩어 고랭지 배추 생산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도매가격이 1만3000원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배추 가격이 급등락을 거듭하자 농가들이 올해 배추 재배를 줄인 것도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농가의 가을배추 생산량은 평년보다 4%, 겨울배추는 15% 줄어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최근 3년간 배추 값은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이고 있다. 폭우·태풍·폭염 등으로 생산이 줄자 가격이 급등하고, 농가에서 배추를 많이 심어서 공급량이 크게 늘자 가격이 다시 폭락하는 구조다.

배추뿐 아니라 김치를 담그는 데 필요한 양념 재료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 새우젓(250g)의 경우 대형마트에서 6160원으로 지난해 2892원보다 두 배 넘게 올랐다. 고춧가루를 만드는 데 필요한 건고추는 2.4㎏에 7만2500원으로 평년의 3만5000원보다 두 배 넘게 폭등했다. 생강은 작년보다 48%가, 깐마늘은 26%가 각각 상승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폭염으로 서해 바다에 해파리가 늘면서 새우를 다 잡아먹었다"며 "붉은 고추 수확 시기에 불볕더위가 계속되면서 출하량이 지난해보다 20% 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김장용 햇건고추를 미리 구입한 주부 이선영씨는 "배추 가격이 해마다 널뛰기를 하는 데다 고추 가격도 크게 올라 김치 담그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유통업계는 사전 계약재배 등을 통해 배추를 싼 가격에 공급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마트 장희성 바이어는 "배추 가격 변동이 심해 사전 계약재배 물량을 늘리고 있다"며 "고랭지 배추 10만 포기를 시세보다 20~30% 정도 할인해 판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