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판매서 골라담기로… 쇼핑도 스마트 바람

주부 허은정(32)씨는 지난 10일 '골라담기 행사'가 열린 이마트 서울 은평점에서 딸기맛과 포도맛 요플레를 골라 봉지에 담았다. 허씨는 "종류가 정해져 있는 묶음상품과 달리 원하는 상품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고, 10개 묶음이 4640원이라 낱개(615원)보다 가격도 싸다"고 말했다.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무작정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제품을 한푼이라도 싸게 사려는 '스마트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소비자들의 주체적인 소비 패턴이 반영된 대표적 사례가 골라담기다. 이마트에선 올해 상반기 골라담기 행사 매출액이 작년보다 64% 증가했다. 소비자 반응이 좋아 골라담기 상품 가짓수도 작년 22개에서 30개로 늘렸다. 주재형 이마트 바이어는 "동일 상품을 3~10개로 묶어서 판매할 때 매출이 평균 50% 증가하는 데 비해 골라담기 형태로 판매할 때는 매출이 100% 증가한다"고 말했다.

'불황엔 뭐든지 안 팔릴 것'이라는 통념을 깨는 제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오히려 불황일수록 성장하는 상품도 있다.

가전제품 시장에서 확연히 남다른 경쟁력을 가진 제품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 7월 출시한 문 4개짜리 냉장고 'T9000'은 300만원이 넘는 고가인 데도 한 달 만에 1만대 이상 팔렸다.

내부 용량이 국내 최대 수준(900L)일 뿐 아니라, 편의성을 크게 개선한 수납 설계가 인기 비결로 꼽혔다. 평소 주부들이 냉장칸에서 음식을 꺼내기 위해 허리를 굽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주목해 냉장칸을 위쪽으로만 배치했다. 냉장칸 실내도 기존 양문형 제품보다 넉넉하게 만들어 피자처럼 지름이 긴 요리도 집어넣을 수 있게 만들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꼭 필요로 했던 기능을 갖춘 것이 상품 히트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빠듯해진 서민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절약형' 제품도 불황에 강한 효자 상품이다. LG생활건강의 '리엔 흑모비책'은 미용실에서 염색하기는 비용이 부담스럽고 혼자 염색하는 것은 번거롭다고 느끼는 소비자를 타깃으로 삼았다. 새치를 스스로 염색할 때 제일 힘든 점이 염색약 분량을 맞추는 점이라는 판단하에 1회 사용량만큼만 소량 포장해 내놓았다. 이 제품은 월 평균 32만개씩 팔리며 인기를 얻고 있다.

미용실에 가지 않고 집에서 모발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한 애경의 '케라시스 살롱케어 앰풀 클리닉 샴푸'와 뚜껑을 측량컵으로 활용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인 '리큐 2배 진한겔'도 인기다. 장기 불황을 우리보다 먼저 겪은 일본에선 생활용품 1위 기업 카오(花王)가 2008년 샴푸처럼 머리에 바르고 헹구기만 하면 되는 염색약 '브로네 거품컬러'를 출시해 두 달 만에 100만개 판매고를 올렸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쉽사리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소비자들도 무작정 지갑을 닫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며, "오랜 불황을 겪으며 소비 패턴이 진화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