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현의 문학산책] 축구장은 육체의 신성한 환희를 보여주는 극장이다
입력 : 2012.08.13 22:18
1차대전 때 영국군 축구공 차며 돌격… 부조리한 전쟁 향한 반항 아니었을까
골키퍼 출신 카뮈, 고독한 골대 앞에서 삶의 부조리와 함께 집단의 도덕 깨달아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7월 1일 영국군 이스트 서리 연대는 프랑스 솜 지역에서 독일군과 맞붙었다. 이스트 서리 연대는 300야드가량 떨어진 독일군 기관총 진지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윌프레드 네빌 대위가 지휘하는 B중대가 선봉에 섰다. 네빌 대위는 공격에 앞서 4개 소대에 축구공을 하나씩 전달했다. 그는 각 소대가 적 진지를 향해 공을 차고 가면서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축구 종가(宗家)' 영국의 젊은 병사들은 중대장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 "돌격!" 명령이 떨어지자 4개 소대장들이 공을 앞으로 내찼다. 병사들은 독일군의 기관총 탄환이 빗발치는데도 함성을 내지르며 축구공을 쫓아 미친 듯이 돌격했다. 병사들이 숱하게 쓰러졌지만 결국 전투는 영국군 승리로 끝났다. '축구 돌격' 전술을 지휘한 네빌 대위는 맨 앞에서 달리다가 적 진지를 둘러싼 철조망을 코앞에 두고 쓰러졌다. 그는 스물두 살 생일을 보름 앞두고 전사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포연(砲煙)이 걷힌 뒤 독일군 참호에 떨어진 축구공 2개를 되찾았다.
솜 전투는 140일에 걸쳐 계속됐다.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 측에선 각각 36만명과 20만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왔다. 독일군 사상자도 47만명이나 됐다. 당시로선 첨단무기였던 탱크와 기관총이 투입됐고, 독가스까지 사용된 탓에 인류사에서 가장 잔혹한 전투가 되고 말았다. 인류 문명이 스스로에게 저지른 대참사(大慘事)였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사람 목숨이 얼마나 하찮을 수 있는가를 보여준 전쟁이었다. 이런 생지옥에서 영국군 병사들은 축구공을 차면서 달려갔다. 분명히 그들은 무모했고, 만용을 부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어차피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네빌 대위는 그런 병사들의 용기를 북돋기 위해 축구공을 몰고 가라고 했다. 그는 병사들이 서 있는 죽음의 벌판을 생명의 놀이판으로 잠시 바꾸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병사들은 사신(死神)이 지키는 운명의 골대를 향해 슈팅을 하면서 죽음을 향해 항의했던 것이 아닐까. 네빌 대위와 병사들은 그들을 전쟁으로 몰아넣은 부조리(不條理)한 상황 앞에서 축구공을 뻥뻥 차면서 반항의 퍼포먼스를 펼친 것은 아닐까.
'축구 종가(宗家)' 영국의 젊은 병사들은 중대장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 "돌격!" 명령이 떨어지자 4개 소대장들이 공을 앞으로 내찼다. 병사들은 독일군의 기관총 탄환이 빗발치는데도 함성을 내지르며 축구공을 쫓아 미친 듯이 돌격했다. 병사들이 숱하게 쓰러졌지만 결국 전투는 영국군 승리로 끝났다. '축구 돌격' 전술을 지휘한 네빌 대위는 맨 앞에서 달리다가 적 진지를 둘러싼 철조망을 코앞에 두고 쓰러졌다. 그는 스물두 살 생일을 보름 앞두고 전사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포연(砲煙)이 걷힌 뒤 독일군 참호에 떨어진 축구공 2개를 되찾았다.
솜 전투는 140일에 걸쳐 계속됐다.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 측에선 각각 36만명과 20만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왔다. 독일군 사상자도 47만명이나 됐다. 당시로선 첨단무기였던 탱크와 기관총이 투입됐고, 독가스까지 사용된 탓에 인류사에서 가장 잔혹한 전투가 되고 말았다. 인류 문명이 스스로에게 저지른 대참사(大慘事)였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사람 목숨이 얼마나 하찮을 수 있는가를 보여준 전쟁이었다. 이런 생지옥에서 영국군 병사들은 축구공을 차면서 달려갔다. 분명히 그들은 무모했고, 만용을 부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어차피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네빌 대위는 그런 병사들의 용기를 북돋기 위해 축구공을 몰고 가라고 했다. 그는 병사들이 서 있는 죽음의 벌판을 생명의 놀이판으로 잠시 바꾸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병사들은 사신(死神)이 지키는 운명의 골대를 향해 슈팅을 하면서 죽음을 향해 항의했던 것이 아닐까. 네빌 대위와 병사들은 그들을 전쟁으로 몰아넣은 부조리(不條理)한 상황 앞에서 축구공을 뻥뻥 차면서 반항의 퍼포먼스를 펼친 것은 아닐까.
인간은 합리성을 지향하지만, 세계는 비합리성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두고 '실존의 부조리'라고 한다.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에 맞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살, 희망, 반항의 세 가지라고 말했다. 그런데 자살은 부조리를 깨닫는 인간의 의식을 지워버리는 것이므로 옳지 못한 해결책이고, 희망은 흔히 종교의 형태를 취해 '지금-이곳'이 아닌 '피안(彼岸)'을 추구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카뮈는 세계의 모순을 마주 보면서 끊임없이 의식의 긴장을 통해 실존의 부조리에 반항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고 역설했다.
카뮈가 네빌 대위의 축구 돌격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다. 카뮈는 혁명을 위한 살인이나 죄인을 처벌하는 사형제를 모두 반대했다. 그는 아마 네빌 대위의 전술이 무모한 자살 행위이거나 눈먼 애국심에 희망을 맡겨버린 도박이었다고 비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네빌과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카뮈와 네빌 두 사람 다 축구를 엄청나게 사랑했다.
카뮈는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성장기를 보내며 축구공을 찼다. 유복자로 태어나 가난한 할머니와 어머니 밑에서 자란 카뮈는 아이들과 공을 찰 때 꼭 골키퍼를 봤다. 공을 차느라 운동화가 닳았다간 새 신발을 사줄 수 없는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교와 대학 축구부에서 골키퍼로 활약했다. 흔히 축구공을 차는 소년이라면 스트라이커나 미드 필더를 선호하지만, 카뮈는 골대 앞에서 고독한 골키퍼 역할을 좋아했다. 그의 미완성 자전 소설 '최초의 인간'에서 주인공 소년은 "고교 축구부의 정식 골키퍼가 돼 다시 태어났다"며 기뻐했다. 더구나 어느 소녀랑 첫 입맞춤을 나눈 지 사흘 만에 얻은 기쁨이기도 했다.
작가가 된 뒤 카뮈는 축구를 통해 "공이 이쪽으로 와줬으면 하고 바라는 쪽으로는 절대 오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예측하기 힘든 운명에 시달리는 부조리를 탐구한 카뮈의 문학은 왼쪽 오른쪽에서 마구 쏟아지는 상대방의 슈팅을 막으면서 무르익었던 모양이다. 카뮈는 "나는 도덕의 일부를 축구 경기장과 내 진정한 대학교로 남아 있을 극장에서 배웠다"고 했다. 축구장과 연극 극장은 똑같이 육체의 신성한 환희와 집단행동의 미덕을 가르치는 곳이란 얘기였다.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축구가 첫 동메달을 땄다. 한일전은 축구가 왜 전쟁을 대리하는 스포츠인가를 잘 보여줬다. 동시에 카뮈의 말처럼 축구장이 극장처럼 드라마의 감동을 안겨주는 곳이란 점도 일깨워줬다. 이제 올림픽은 끝났고, 2014년 월드컵을 기다릴 때다. 한국 축구가 본선 티켓을 따는 과정이 제발 마음 졸이지 않고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를 빚어냈으면 좋겠다.
카뮈가 네빌 대위의 축구 돌격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다. 카뮈는 혁명을 위한 살인이나 죄인을 처벌하는 사형제를 모두 반대했다. 그는 아마 네빌 대위의 전술이 무모한 자살 행위이거나 눈먼 애국심에 희망을 맡겨버린 도박이었다고 비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네빌과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카뮈와 네빌 두 사람 다 축구를 엄청나게 사랑했다.
카뮈는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성장기를 보내며 축구공을 찼다. 유복자로 태어나 가난한 할머니와 어머니 밑에서 자란 카뮈는 아이들과 공을 찰 때 꼭 골키퍼를 봤다. 공을 차느라 운동화가 닳았다간 새 신발을 사줄 수 없는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교와 대학 축구부에서 골키퍼로 활약했다. 흔히 축구공을 차는 소년이라면 스트라이커나 미드 필더를 선호하지만, 카뮈는 골대 앞에서 고독한 골키퍼 역할을 좋아했다. 그의 미완성 자전 소설 '최초의 인간'에서 주인공 소년은 "고교 축구부의 정식 골키퍼가 돼 다시 태어났다"며 기뻐했다. 더구나 어느 소녀랑 첫 입맞춤을 나눈 지 사흘 만에 얻은 기쁨이기도 했다.
작가가 된 뒤 카뮈는 축구를 통해 "공이 이쪽으로 와줬으면 하고 바라는 쪽으로는 절대 오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예측하기 힘든 운명에 시달리는 부조리를 탐구한 카뮈의 문학은 왼쪽 오른쪽에서 마구 쏟아지는 상대방의 슈팅을 막으면서 무르익었던 모양이다. 카뮈는 "나는 도덕의 일부를 축구 경기장과 내 진정한 대학교로 남아 있을 극장에서 배웠다"고 했다. 축구장과 연극 극장은 똑같이 육체의 신성한 환희와 집단행동의 미덕을 가르치는 곳이란 얘기였다.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축구가 첫 동메달을 땄다. 한일전은 축구가 왜 전쟁을 대리하는 스포츠인가를 잘 보여줬다. 동시에 카뮈의 말처럼 축구장이 극장처럼 드라마의 감동을 안겨주는 곳이란 점도 일깨워줬다. 이제 올림픽은 끝났고, 2014년 월드컵을 기다릴 때다. 한국 축구가 본선 티켓을 따는 과정이 제발 마음 졸이지 않고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를 빚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