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두 남자가 새로 만든 '희망'의 솟대

한국 전통미를 대표하는 희망의 상징 솟대. 여기에 미쳐 20년째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중등교사 출신 70대 전업작가와 컴퓨터디자인 전공 50대 대학교수가 손을 맞잡고 전시회를 마련했다.

오는 21일까지 청주시 북문로3가 우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한국 전통미의 재해석전(展)'. 지역작가의 예술창작 지원을 위해 마련한 이번 전시회에서 솟대 명장 조병묵(71) 작가와 한국교통대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장효민(50) 교수가 특별한 만남을 갖는다. 협업전 형태의 전시에서는 조 작가의 솟대 작품 100여 점과 장 교수의 솟대 이미지를 활용한 컴퓨터그래픽 작품 30여 점이 선보인다.

두 사람의 만남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장 교수가 청주 한국공예관에서 솟대를 주제로 전시를 하던 당시 솟대 작가로 이름을 알리던 조 작가를 만나 인연을 맺게 됐다. 솟대의 매력에 푹 빠진 두 사람은 이후 각자 창작활동을 하면서도 공동 전시회를 해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고,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공동전 준비작업을 시작했다. 조 작가의 솟대 작품을 원형으로 삼아 장 교수가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솟대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었다. 전시회장에는 조 작가의 솟대 작품과 장 교수가 만든 이미지 작품이 구획을 나눠 선보이고 있다. 전시의 핵심은 평면과 입체의 협업이다. 한국적 원형을 갖춘 조 작가의 입체작품과 이를 평면작품으로 재해석한 솟대를 통해 전통적 소재의 현대적 조형성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조 작가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보통 야외에 전시되는 솟대와 달리 여성적이면서 현대적이고 고급스러워 실내용으로 적합하다는 점이다. 솟대를 실내 소품으로 끌어들이는 데 창작의 주안점을 뒀다. "공주박물관에 서 있던 솟대 모습에서 정한수를 떠놓고 기원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봤습니다. 너무 좋았어요. 그 어머니 모습을 마을 밖에 세워두면 매일 볼 수 없어 솟대를 소품화하고 변형시켰어요. 내 마음의 꿈을 하늘에 전해주는 솟대를 생각하면서 작품을 만들어왔지요."

27년의 중등교사, 10여년의 사설우체국장을 역임한 그는 박물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솟대에 푹 빠져 전업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전시회를 열었고, 국내외에서 한국 전통미를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다. 국회의사당·인사동·정부종합청사 등에 그의 작품이 전시됐다. 그는 특히 국내 작가 가운데 처음으로 솟대 작품에 옻칠을 입혀 고급스러운 문화상품으로 탈바꿈시켰다. 옻칠을 한 솟대는 반영구적이고 오방색 등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옻칠은 하느님이 주신 신비의 색입니다. 참 아름다워요. 좀을 먹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속살이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조 작가는 이순(耳順)을 넘어 옻칠을 배우기 시작해 어느덧 전문가가 됐다. 그의 평생 소원은 서울 청계천에 미국의 자유여신상 못지않은 청동 솟대를 세우는 것이다.

장 교수는 솟대의 가치를 재창조해 문화상품으로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 조 작가가 만든 솟대 작품은 컴퓨터그래픽과 컴퓨터 아트분야 전문가인 장 교수의 손을 거치면서 첨단예술과 만나 새롭게 변신했다. 그림과 디지털 프린트, 사진 등을 통해 솟대의 모습이 다양한 형태로 변형된 것이다. 장 교수는 "솟대는 한국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문화상품이자 복을 가져다주는 마스코트"라며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쳐나는 솟대 형상을 나만의 시각언어로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솟대는 마을 안녕과 수호, 풍농,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우는 것으로, 우리 민족 신앙의 상징이자 희망의 이미지를 대표한다. 조 작가와 장 교수는 이 같은 기원과 희망의 메시지를 현대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솟대 이미지를 담은 마우스패드를 만들었고, 연말에는 솟대 달력도 만들어볼 참이다. 이번에 처음 시도된 입체와 평면의 결합 작업은 결국 솟대를 전통에서 현대로, 야외에서 실내로, 박물관에서 우리 실생활 곁으로 끌어오기 위한 몸부림이다.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지칠 줄 모르고 달려가는 두 남자의 다음 시도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