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돌파작 벌써 18편… 한국영화, 체질이 변했다

"한국영화의 '체질'이 변했다."

화려한 캐스팅과 제작진으로 일찍부터 흥행이 예상됐던 '도둑들'(최동훈 감독)이 15일 1000만(배급사 집계) 관객을 넘어선데 이어 개봉전 평단으로부터 그다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하 바람사·김주호 감독)까지도 이날 200만(배급사 집계) 관객을 돌파하자 나오는 평가들이다. 두 작품의 흥행 호조는 일부에서 "한국 영화가 미쳤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올해 초부터 계속되고 있는 한국 영화 강세의 연장선에 있기도 하다.

올해 상반기 한국 영화 관람객 4417만명은 지난해 동기 대비 34.6% 늘어난 수치다. 역대 최고 관객을 기록했던 2006년 상반기(4148만명) 관객 수보다도 많다. 8월 중순까지 100만 이상 관객 동원 작품 수도 2010년 13편, 2011년 16편에서 올해는 18편으로 늘어났다.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원동력은 뭘까.

①장르의 다양화

'도둑들'과 '바람사'는 '케이퍼(caper) 무비'다. 무언가를 훔치는 모습과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범죄영화의 하위장르 중 하나이다. 한 제작사 대표는 "'케이퍼 무비'는 그동안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장르이다. 그런 작품 두편이 연달아 성공할 줄은 몰랐다"라고 했다.

'한국 관객들은 코미디 아니면 액션을 좋아하는 시대'가 막을 내리고 흥행에서도 장르의 장벽이 무너진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와 정통 멜로 영화도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하기 어려운 장르로 꼽혔지만 올해 들어선 '내 아내의 모든 것' '건축학 개론' 두 작품 모두 4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법정드라마도 342만명을 동원한 '부러진 화살'로 흥행력을 입증했다.

영화 평론가 전찬일씨는 "10여년 전만 해도 할리우드 영화와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 뚜렷하게 구분됐다. 그러나 할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 익숙해진 요즘 관객들은 할리우드 영화의 장르 공식에 우리의 정서가 더해진 한국 영화를 선호하게 됐다"고 했다.

②'떼주연'(멀티캐스팅)의 대세

'도둑들'과 '바람사'의 주연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린 배우만 각각 10명과 11명이다. 이전 같으면 주연배우가 남녀 각 한명씩밖에 없었던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도 이제는 주연이 서너명씩 등장한다. '건축학 개론'의 주연배우 네명, '내 아내의 모든 것' '은교' '후궁'의 주연배우가 각각 세명인 식이다. 주연배우로 스타가 한두명 등장하는 '원·투톱' 영화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고 '주연급 조연'들도 늘어났다.

제작사 리얼라이즈의 김호성 대표는 "예전에는 관객들이 줄거리 위주의 영화를 즐겼다면 지금은 여기에 캐릭터가 더해졌다. 영화를 소비하는 게 캐릭터를 체험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캐릭터를 내세우거나, 조연에게도 제대로 된 캐릭터를 부여하게 됐다"고 했다. 투자배급사 NEW 영화총괄팀의 장경익 이사는 "요즘 대중은 '멀티'에 능하다. TV예능 프로그램에선 이미 출연자나 패널이 여러 명 등장한 지 꽤 됐다. 여기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원·투톱 영화가 지루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③30대 이상 관객의 힘

영화계에선 "영화제작자들이 주 관객층 타깃을 과거 10대와 20대에서 최근 들어 30대 이상으로 상향조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관객층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이게 됐다"고 보고 있다. '건축학 개론'은 90년대에 대학교를 다녔던 30대가, '내 아내의 모든 것'도 30대 이상 기혼자들이 공감할 만한 소재를 다뤄 성공했다. '도둑들'에서도 '전지현―김수현''김윤석―김혜수''임달화―김해숙'등 다양한 연령대별 커플을 내세워 전(全)세대를 만족시켰다.

실제 영화예매사이트 맥스무비가 집계한 '도둑들'의 연령별 예매율을 보면 20대 26%, 30대 40%, 40대 31%였다. 또 '건축학 개론'과 '내 아내의 모든 것'의 20·30·40대 관람 비율은 각각 24％, 45％, 28％와 33％, 45%, 20％로 30·40대를 합친 비중이 20대의 그것을 한참 앞선다. 한국 영화 흥행 주역으로 30대 이상 관객이 떠올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