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 최악 수주 가뭄… 40년 만의 보릿고개

경남 통영에 있는 중소 조선소 신아SB는 2008년 말부터 4년 가까이 신규 건조 물량을 한 건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중소형 선박을 만드는 작업 공간인 도크가 네 개 있지만, 도크 두 개는 몇 달째 비어 있다. 그나마 현재 짓고 있는 두 척의 선박이 10월에 인도되고 나면, 조선소 전체가 개점휴업에 들어갈 형편이다.

신아SB와 이웃하고 있는 삼호조선은 실적 악화에 시달리다 지난 2월 파산을 신청하고 조선소를 완전히 닫아버렸다.

신아SB 관계자는 "한창 좋을 때 협력사 직원을 포함해 3000여명이 일하던 조선소에 지금은 절반도 근무하지 않는다"면서 "신규 수주 물량 확보를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연내에 신규 수주가 가능할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국내 조선업계가 최악의 시련기를 보내고 있다. 2008년부터 연이어 터진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의 여파로 극심한 '수주 가뭄'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 조선소는 신규 수주를 못해 줄파산 위기에 직면해 있고, 대형 조선소도 실적 악화에 따라 무기한 버티기에 돌입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금융위기 직후엔 신규 주문이 줄었을 뿐 건조 물량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신규 주문이 없고 건조 물량도 바닥을 보이고 있다"면서 "우리나라가 조선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1970년대 초반 이후 40여년 만에 사상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3대 조선소인 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은 올 2분기 나란히 '어닝 쇼크' 수준의 실적을 기록했다. 현대중공업은 계열사 실적을 반영한 연결 기준 순이익이 1341억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3.0% 쪼그라든 것이다.

삼성중공업도 2분기 순이익이 1931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26.4% 줄었다. 이달 말 실적을 발표하는 대우조선해양도 순이익이 30% 이상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박무현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대형 조선소는 (원유 시추 등을 위한 고가 선박인) 해양 플랜트 시장의 호황으로 그나마 실적을 방어한 것"이라면서 "상선(商船) 건조가 주력인 중소 조선소는 버티기 힘든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 위기의 근원은 신규 주문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선박업계의 큰손인 그리스 등 유럽 선사(船社)들이 유로존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조선·해양·플랜트 부문 수주 목표액을 240억달러로 잡고 있지만, 올 상반기 수주액은 50억달러에 그쳤다. 국내 주요 9개 조선소의 올 상반기 수주량은 318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1.4% 줄었다.

각국 조선소가 보유한 일감이 얼마인지 보여주는 세계 수주 잔량도 9669만CGT까지 떨어졌다. 수주 잔량이 1억CGT 미만으로 떨어진 것은 2005년 5월 이후 처음이다.

신규 주문이 줄어들면서 선박 가격도 큰 폭의 내림세를 타고 있다. 각국 선주(船主)가 발주하는 선박의 건조 단가를 평균한 클락슨 선가(船價) 지수는 지난 6월 131.3까지 떨어졌다. 조선 호황기인 2007년에 기록한 183.9보다 30% 가까이 낮은 수준이다. 수주 가뭄에 시달리다 못한 대형 조선소마저 저가 수주 경쟁에 뛰어들 조짐을 보이면서 수주 단가는 앞으로도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전재천 대신증권 연구원은 "조금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는 조선소가 많아 구조조정이 쉽지 않다"면서 "특히 중국 정부가 위기에 빠진 자국 조선소 지원에 나서면 업황 회복이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