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우 교수의 경영수필] 완벽한 신제품? 가격과 품질 사이 균형을 잡아라

우리나라는 통신, 디지털 가전, 자동차와 같은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산업 수준 못지않게 소비자들의 관심과 수준도 높아 산업을 견인하는 큰 힘이 되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전으로 외부 소비자가 참여하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이런 수준 높은 소비자와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새 제품을 남들보다 앞서 경험하려는 소비자)는 우리의 큰 자산이다. 신제품에 대한 높은 관심과 풍부한 지식으로 무장한 얼리어답터는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의미 있는 평가를 내놓으며 소비자들의 구매 결정에 좋은 잣대가 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일반 소비자들이 미처 깨닫기도 전에 작은 불편함이나 결함을 찾아내 문제를 제기하면서 소비자 파워를 높이기도 한다. 기업들은 내부 개발자보다 더 전문가다운 이들의 의견에 긴장해야 하고, 이들의 날카로운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 제품의 품질을 업그레이드(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똑똑해진 소비자로 뜻밖의 불만 제기되기도

필자가 소니코리아에 근무하던 때의 이야기다. 그전까지만 해도 신제품은 일본과 다른 선진 시장에 먼저 출시한 다음 시차를 두고 한국에 판매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당시 처음으로 일본, 미국, 유럽과 동시에 한국에 출시한 신상품이 있었다. 최고 성능의 디지털 카메라 신제품이었다. 그동안 한국 시장에 디지털 신제품을 빨리 판매해 줄 것을 줄기차게 주장해 온 충성 고객들과 담당자들 노력의 결과였다.

그런데 출시 전부터 얼리어답터들의 큰 관심을 끌었던 이 카메라는 출시하자마자 네티즌 사이에서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제품의 성능이나 디자인은 탁월한데 일부 사진에서 색상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출시된 신제품이었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얼리어답터를 중심으로 문제가 제기됐고 일반 소비자들에게까지 관심이 확산됐다. 이런 현상을 제품의 결함이 아닌, 특수한 환경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이례적인 것으로 이해한 소니 본사는 '차후 품질 개선과 애프터서비스(AS)는 하겠지만 환불(還拂)이나 리콜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만난 소비자들의 반응은 "브랜드에 걸맞게 무조건 완벽한 제품이어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제품이 급속히 진화하고 발전하면서 신모델이 계속 출시되는데 혹시나 이런 문제로 앞으로 한국 시장에 신제품을 빨리 출시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우려하는 소비자도 있었다.

◇전문용품이 아닌 소비자용 신제품은 완벽성 추구하면 오래 걸리고 가격도 비싸져

이런 우려는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문제다. 제품을 개발할 때 소비자들이 일반적으로는 잘 쓰지 않는 상황까지 다 고려하다 보면 제품 도입이 늦어지고 추가 비용이 들게 돼 새로운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빨리 만나고 싶은 대다수 소비자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다.

모니터를 예로 들어 보자.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컴퓨터 모니터와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사용하는 모니터는 같은 모니터지만 성능과 가격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NASA에서 우주선 발사를 모니터링하는 데 사용하는 제품은 조그마한 화질 문제나 품질 불안정도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전문용 제품(professional product)'의 경우 한 치의 실수도 없는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연구·개발하고, 품질이 입증된 부품만을 사용하며 철저한 검증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전문용 제품은 연구·개발기간도 오래 걸리고 가격도 매우 비싸다. 일반 소비자들에게 파는 제품도 이처럼 출시하기에 앞서 NASA에서 사용하는 제품과 같이 완벽성을 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소비자들은 완벽한 신제품을 만나기 위해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일반 제품보다 훨씬 비싼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가격과 품질 사이 균형점 찾아야

그러나 우리가 쓰는 것은 '소비자 제품(consumer product)'이다. 일반 소비자의 사용 환경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기능과 성능을 위해 과연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일반 소비자의 사용 환경에 맞는 적정 수준의 품질을 정하고 좀 더 감당할 만한 가격과 합리적인 시간 안에 만들 것인가?

이는 전적으로 트레이드 오프(trade-off) 문제이다. 트레이드 오프란 '두 목표 가운데 하나를 달성하려고 다른 목표 하나를 포기하거나 달성 시기를 늦추는 경우'를 뜻한다. 무엇이 소비자에게 최고의 가치를 줄 수 있을까? '소비자 제품'은 납기, 가격, 품질이 적정 수준에서 '트레이드 오프'될 때 소비자에게 가장 큰 가치를 줄 수 있다.

그리고 그 트레이드 오프의 조합을 결정하는 데 소비자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소비자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은 기업들이 존중해야 한다. 소비자의 참여와 협업이 중요시될수록 우리가 만드는 (전문용 제품이 아닌) '소비자 제품'의 경우 어떤 제품 규격과 사용품질이 적정 수준인지를 서로 소통하며 합의를 만들어 가야 한다. 제조업체의 열린 생각과 더불어 소비자들의 '소비자 제품'에 대한 성숙된 의식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