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빛 사막 위, 자연이 만든 예술공원

청명한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푸른 대지. 호주에서 유일하게 인도양을 접하고 있는 서호주는 코발트블루의 바다와 새하얀 모래사장, 투명하고 맑은 공기가 어우러져 살아있는 자연 그대로의 야생에 푹 빠질 수 있는 곳이다. 서호주 관문인 퍼스 인근은 지중해성 기후로 일년 내내 쾌적한 날씨가 이어져 여름에는 피서(避暑), 겨울에는 피한(避寒) 여행지로 좋다. 무엇보다 세련된 도시 문명과 훼손되지 않는 야생의 모습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호주 여행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손꼽힌다.

◇피너클스:석회암 기둥들이 빚어낸 이색 풍경

호주 아웃백(호주 내륙의 사막 등 미개척지)의 대표적 볼거리 중 하나가 피너클스(pinnacles)다. 퍼스 북쪽으로 250㎞ 떨어진 남붕국립공원에 있다. 해안가를 따라 북쪽으로 차를 달렸다. 퍼스에서 피너클스로 가는 길옆은 무성한 숲이었다가 곧이어 광활한 초원으로 풍경을 바꾼다.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는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이어지고, 가끔 양과 소를 방목하는 목장이 눈에 띌 뿐 수십㎞를 달려도 민가를 찾아볼 수 없다. 이 지역은 캥거루 서식지로, 가끔 캥거루들이 도로로 뛰어들어 사고가 나기도 한단다. 초원은 남반구의 봄이 시작되는 9~10월이면 온통 노랑, 보라 등의 야생화로 뒤덮여 장관을 이룬다.

초원이 끝나는 지점에서 갑자기 사막이 나타나더니, 그 사막 위에 기이한 풍경이 펼쳐졌다. 모래에 뿌리내린 크고 작은 석회암 기둥(피너클)들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호주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로 꼽히는 피너클스 사막이다. 마치 SF영화에 등장하는 외계 행성에 우주선을 타고 불시착한 것 같다. 특히 해질 무렵 오렌지색으로 빛나는 모래 사막 위에 1만5000여개의 석회암 기둥들이 빚어내는 장관이 유명하다. 작게는 허리춤에 오기도 하고 크게는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다양한 모양의 석회암들은 황량한 사막을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시켰다.

피너클스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인근 해변에 있던 조개껍데기가 부서져 생긴 석회질 성분 모래가 바람에 날아와 원래 숲이었던 이곳을 덮어버린 이후, 비에 쓸려내려간 석회질이 나무뿌리 부근에서 뭉쳐 단단한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이후 나무가 죽은 다음 인근에 있던 석회질 모래는 바람에 날려가고, 침식되지 않은 석회암 부분만 땅 위로 드러나면서 기둥 형태가 된 것이라고 한다.

사막 끝으로 멀리 바다가 내다보이고 그 너머로 다시 초원이 펼쳐졌다. 피너클스 인근 사막은 기후적 요인이 아니라 해안가에서 바람에 날려온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게 특징.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서 사막 모양이 조금씩 바뀐다고 한다. 원주민들은 이곳을 '바람이 부는 강'이라고 부른다. 피너클스로 가는 길옆에도 초원 한가운데 바람에 날아온 모래가 거대한 모래 산을 만든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퍼스로 돌아오는 길에, 해안가에 있는 거대한 모래 언덕인 란셀린을 만났다. 새하얀 모래가 자그마한 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모래 사막용으로 개조한 4륜 구동 버스나 지프를 타고 거대한 모래 언덕을 질주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가파른 모래 언덕을 질주한 뒤 정상에서 급강하하는 묘기가 벌어지면 버스승객들의 비명이 높아진다. 가파른 모래 경사면에서는 널빤지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샌드보딩도 즐길 수 있다. 발이 푹푹 빠져드는 모래 언덕에 올라 아래로 미끄러지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럽에 온 듯한 거리… 코발트빛 바다가 품은 도시

◇프리맨틀: 19세기 유럽풍 도시

퍼스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프리맨틀은 19세기 호주 이민자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항구 도시다. 1829년 개항한 항구의 중심 거리 양쪽으로 고색창연한 유럽풍 건물들이 들어서 마치 영국이나 북유럽 소도시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도시 건물 150여개가 내셔널트러스트(국민이 낸 기금으로 관리되는 것)로 보존되고 있고, 70%는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

가장 인기있는 곳은 프리맨틀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카푸치노 거리. 노천카페로 유명하다. 고풍스러운 거리 양쪽으로 카페와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 있다. 주말에는 관광객은 물론, 퍼스 등지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가게마다 다양한 맛의 카푸치노를 내놓는다. 물을 타지 않으면 마시기 어려울 정도로 진한 맛이 특징이다. 이 진한 커피에 우유를 넣은 ‘플랫 화이트’는 아침에 마시기 좋다. 이곳에 스타벅스는 없다. 대신 호주의 커피 체인 ‘돔 카페’가 주인 노릇을 한다. 청명한 햇살 아래 야외 탁자에 앉아 마시는 커피맛이 일품이다.

1897년 지어진 프리맨틀마켓은 카푸치노 거리의 터줏대감이다. 빛바랜 주홍색 건물 안에는 각종 골동품과 기념품, 핸드메이드 화장품, 건강식품, 모자, 과일 등 다양한 물건이 넘친다. 금요일과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붐비고, 마켓 입구 광장에선 거리 공연이 벌어진다.

프리맨틀 바닷가에 있는 피싱 보트 하버는 바닷가에 식당과 카페가 몰려 있는 식도락 명소. 새우, 홍합 등 신선한 해산물 요리를 즐길 수 있다.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식당 ‘시세렐로’에서 피시 앤 칩스를 시키면 큰 갱지에 싸여 나오는데, 한두 개만 시켜도 4~5명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양이 많다.

프리맨틀은 서호주 정착 초기에 형성된 도시인 만큼 역사적 장소들과 박물관들이 많다. 서호주해양박물관은 인근 해역에서 발견된 난파선과 해양 개척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1850년대 지어진 프리맨틀 감옥은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죄수들을 수감했던 곳으로, 감옥을 둘러보는 코스를 관광프로그램으로 개발한 특이한 경우다.

◇로트네스트섬: 자전거 천국

로트네스트섬은 프리맨틀에서 페리로 20분 거리로, 퍼스나 프리맨틀 시민들의 하루 가족 나들이 코스로 인기다. 자연 생태 보호를 위해 차량 운행을 금지하는 이 섬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자전거다. 관광용 순환버스로 섬을 돌아도 되지만 섬 여행의 진수를 느끼려면 자전거로 길을 나서는 게 좋다. 섬의 길이는 11㎞, 폭은 4.5㎞ 정도로, 자전거로 한 바퀴 도는 데 5시간 정도 걸린다. 가족이나 연인끼리 무공해 섬에서 여유롭게 페달을 밟는 모습이 정겹다. 여름철에는 인도양의 초록빛 바다를 낀 해변에서 스노클링, 낚시, 수영을 즐길 수 있다.

섬 곳곳에선 커다란 쥐처럼 생긴 이상한 동물이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 섬에서만 사는 ‘쿼카’다. 로트네스트는 ‘쥐의 집’이란 뜻으로, 과거 이 섬을 처음 발견한 네덜란드인들이 쿼카들을 쥐로 착각해 붙인 이름이다.

◇퍼스: 서호주의 관문

서호주의 중심도시 퍼스는 시내를 관통해 흐르는 스완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강변을 끼고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킹스 파크는 울창한 숲을 자연친화적으로 꾸며놓은 공원으로 뉴욕 센트럴파크보다 더 크다.

스완 벨 타워는 퍼스의 새로운 아이콘. 투명 유리로 된 뾰족한 탑과 붉은 벽돌색의 외관이 잘 어울린다. 매일 정오 18개 종이 울리는 소리가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다. 직접 종을 쳐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도심에 있는 런던 코트는 영국 튜더 왕조 스타일을 느낄 수 있는 고풍스러운 스타일의 가게들이 즐비한 명소다. 우리로 치면 인사동 거리다. 스완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포도농장 지대인 스완밸리가 나온다.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일조량으로 80여개의 포도 농장이 들어서 있으며, 와이너리에서 시음도 해볼 수 있다.

여행수첩

서호주의 관문인 퍼스는 직항편이 없어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우리와 계절이 반대다. 지중해성 기후 덕에 겨울에 해당하는 7~8월에도 낮 기온이 20도까지 올라간다. 아침저녁에는 쌀쌀하니 긴 팔 옷과 재킷을 준비해야 한다. 시차는 한국보다 1시간 느리다. 퍼스와 프리맨틀에서는 시내 구간을 무료 운행하는 일명 ‘고양이 버스’를 타면 주요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다. 외관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는 버스다.

●서호주관광청 www.westernaustralia.com, (02)6351-5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