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옷은 재미없잖아요?… 제 디자인엔 '남다른 재치'가 있죠"

"저를 떨어뜨린 걸 후회하게 될 거예요."

계한희(25)가 2009년 한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한 패션 디자이너 선발 프로그램의 첫 탈락자가 됐을 때, 심사위원을 향해 던진 말이다.

3년이 흘렀고 그는 어느덧 런던과 뉴욕,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의상 디자이너로 성장했다. 지난해 영국 런던 가을·겨울 패션위크에선 '주목받는 남성복 디자이너 4인' 중 한 명으로 뽑혔다. 동양인 디자이너로는 유일하다. 9월 7일엔 문화부가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주최하는 '컨셉코리아 봄·여름 2013(Concept Korea S/S 2013)'에 참가한다. 역대 컨셉코리아 참가 디자이너 중 가장 어리다.

13일 서울 동대문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 쇼룸에서 만난 계한희는 달라붙는 청바지에 킬힐을 신고 있었다. "지루한 옷은 싫어요. 재미있는 옷을 만들려고 디자이너가 됐어요. 그런 제가 '컨셉코리아'에 참가하게 되다니 뜻밖이면서도 즐겁네요." 무뚝뚝한 말투 끝엔 '풋' 하고 웃음을 보였다.

계한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옷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또래 아이들은 분홍색에 열광할 때, 그는 손톱을 검게 칠하고 다녔다. 국제 고등학교에 다닐 땐 교복이 따로 없었지만, 엄마 옷을 고쳐 홀로 교복을 만들어 입고 다니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영국 명문 패션학교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최연소 나이로 입학 허가를 받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계한희는 "학교 다닐 때도 독특한 옷 입기를 즐겼다. 남의 옷을 빌려 마구 겹쳐 입거나, 눈두덩을 새까맣게 칠하고 다니는 식이었다"고 했다.

2009년 가을·겨울 런던 패션위크에서 계한희는 그만의 이런 과감한 상상력을 도입한 옷을 선보였다. '몸'을 주제로 만든 컬렉션이었다. 사람의 오장육부(五臟六腑)를 그려 넣은 스웨터, 남자의 울퉁불퉁한 근육을 그대로 재현한 점퍼, 고릴라의 거대한 손처럼 보이는 새까만 웃옷까지. 이 중 몇 개는 외국 '아디다스' 매장에 전시되기도 했고, 일본과 뉴욕의 유명 편집 매장에서도 사갔다. 2011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선 딱딱한 군복을 재치있게 재해석한 옷으로 갈채를 받았다.

계한희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흥미롭게 풀어내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런던 패션위크가 워낙 실험정신을 중시하는 곳이라 지금까지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다"고 했다.

계한희는 9월 미국 뉴욕 '컨셉코리아' 무대를 위해선 여성복을 준비한다. 그는 "원래 남녀를 아우르는 옷에 관심이 많다. 자신만만하면서도 귀여운 여성을 위한 옷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학교 폭력'을 주제로 폴리에스터처럼 요즘 다들 기피하는 합성섬유를 고급스럽게 풀어낸 옷부터, 해골과 사슬을 해학적으로 보여주는 액세서리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준비했다. "뉴욕은 런던보다 쉬운 옷을 선호하는 곳이니, 이를 겨냥해 편하면서도 재치가 번득이는 옷을 만들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