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침략 첨병노릇… 日불교의 과오, 참회합니다

'…특히 한반도에서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라는 폭거를 범했으며 조선을 종속시키려 했고, 결국 한국을 강점함으로써 국가와 민족을 말살해버렸다. 우리 종문(宗門)은 그 첨병이 되어 한민족의 일본 동화를 획책하고 황민화(皇民化) 정책을 추진하는 담당자가 되었다. 우리들은 맹세한다.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그리고 과거 일본의 억압 때문에 고통을 받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바이다….'

전북 군산시 동국사에 일본 불교 조동종의 참사문(懺謝文·참회와 사죄의 글)비가 오는 9월 16일 세워진다. 1909년 일본 조동종이 세운 동국사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일본 사찰 건축 양식의 건물 세 곳 가운데 유일하게 현재 한국 불교 사찰로 사용되고 있는 곳. 한국 조계종의 성불사 주지 종걸(宗杰·55·전 동국사 총무) 스님과 일본 조동종의 아오모리(靑森) 운쇼지(雲祥寺) 주지 이치노헤 쇼고(一戶彰晃·63) 스님은 참사문비 건립의 두 주역이다. 일본의 이치노헤 스님을 방문 중인 종걸 스님과 지난 14~15일 전화로 인터뷰를 가졌다.

◇'침략 전진기지' 아픈 역사

군산 동국사가 처음 세워졌을 당시 이름은 금강사.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수탈한 쌀을 실어가던 군산에 세워진 이 사찰은 포교의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사실상 제국주의 침략의 전진기지였다. 종걸 스님은 "당시 금강사의 일본인 주지는 만주국까지 들어가 강연과 포교를 하는 등 침략에 앞장섰다"고 했다. 이치노헤 스님은 "1939년 안중근 의사의 아들 안준생을 데려와 이토의 아들에게 사죄하는 모습을 연출한 남산 박문사(博文寺·현재 남산 신라호텔 자리에 있던 이토 히로부미 추모 사찰)의 주지도 조동종 소속 승려였다"고 말했다. 조동종은 '심전(心田) 개발'이라 불렸던 조선인 황민화 운동에서도 선봉에 섰다.

◇"진작에 했어야 할 일"

"이제 일본 불교가 부처님 정신에 따라 진정으로 제국주의 시대의 과거를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됐습니다." 종걸 스님은 지난 3월 한국을 방문한 이치노헤 스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치노헤 스님도 흔쾌히 동의했다. "진작에 했어야 하는 일인데 오히려 미안한 마음입니다. 이제라도 참회문을 비석에 새겨 남길 수 있게 된다면 부처님께 감사드릴 일이겠지요." 이치노헤 스님은 일본 내에서 인권·평화 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승려. 지난해 8월 동국대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동국사의 존재를 알게 됐고, 10월에는 당시 동국사 총무로 일본어가 유창한 종걸 스님과 교류를 시작했다. 이치노헤 스님은 중국 난징(南京) 대학살 당시 일본 조동종의 역할을 고발한 '조동종의 전쟁'을 2010년 펴낸 뒤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서 조동종이 저지른 일을 낱낱이 밝히는 책을 준비 중이었다. 작년 11월엔 이치노헤 스님 등 일본 승려·지식인 30여명이 참여한 '동국사 지원회(동지회)'도 결성됐다. 조동종은 지난 4월 종무회의에서 동국사 참사문비 설치를 승인했다. 비문은 1992년 조동종 종무총장(종단 최고책임자) 명의로 발표됐던 것을 쓰기로 했다. 20년 전 발표된 글이지만 조동종 차원의 참회의 마음을 가장 절절히 담은 것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진정한 참회, 미래 향한 큰 걸음"

약 2000만원이 소요되는 제작 비용은 일본의 동국사 지원회가 맡기로 했다. 비석은 전북 익산에서 나는 고급 화강암인 황등석(黃登石)을 사용해 한국에서 만들고 있다. 높이 2m, 폭 1.2m의 비석에 일어 원문과 한글 번역문 참사문을 새기는 작업은 거의 마무리된 상태. 종걸 스님은 "조동종의 참사문은 '통석의 념' 같은 공허한 관념어가 아니라 매우 구체적으로 잘못을 적시하고 사죄하는 글"이라고 했다. 이치노헤 스님은 "국교 정상화 이후 47년이 지났는데도 한일 관계가 여전히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된 참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이 비석의 건립이 미래를 향한 커다란 한 걸음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식민지 지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방법은 진정한 참회뿐입니다."

☞조동종(曹洞宗)

일본 내 단일 종단으로는 가장 큰 불교 종단. 육조 혜능(慧能·638~713)으로부터 나온 선종 종파의 하나로 승려 도겐(道元·1200~ 1253)이 송나라에 유학한 뒤 1229년 일본에 전파했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시기에는 다른 종단과 함께 침략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뒷받침했으나 1992년 종무총장 명의로 과거를 사죄하는 ‘참사문’을 발표했다. 이후 종단 차원에서 일본 내 강제 징용자 유골 발굴, 야스쿠니 신사 전범 합사 반대 운동 등을 벌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