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子의 기술·영업력 시너지… 송풍기(공조용· 점유율 25%) 국내 1위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송풍기 제조업체 금성풍력 공장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꽝꽝'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쪽에선 프레스기가 철판을 쿵쿵 잘라냈고, 용접공 어깨너머로는 파란 불꽃이 튀었다. 1975년 문을 연 금성풍력은 국내 공조(空調)용 송풍기(送風機)시장에서 점유율 25%로 1위 업체다. 대형 건물 내부에 설치되는 공조용 송풍기는 에어컨이나 히터 등 공조기가 만든 따뜻하고 차가운 바람을 건물 곳곳으로 실어 나르는 장치다.

온·습도 유지가 필수적인 반도체 공장이나 서울 시내 대형 병원에 가보면 어김없이 이 회사 송풍기가 설치돼 있다. 2007년 70억원 수준이던 매출은 작년에 200억원을 넘어서는 등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직원도 50명에서 100명으로 두 배가 됐다.

송풍기 분야의 세계 표준 인증인 미국 암카(AMCA) 인증을 획득할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나다.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비결은 강철판을 잘라내는 것부터 용접·조립·도장까지 모든 제조 과정을 직접 책임지는 방식을 40년 가까이 고수하는 것이다.

정동기(68) 대표는 공장 한쪽의 송풍기 날개를 손으로 뱅그르르 돌리며 말했다. "날개의 미세한 각도에 따라 소음 크기뿐 아니라 기기 수명까지 달라져요. 중소기업은 품질이 생명인데, 내가 원하는 수준을 맞출 만한 외주(外注)업체를 찾기가 어려워 직접 하게 됐죠."

전남 장성 출신인 정 대표는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다. "배고픔을 이겨보자고 입고 있던 옷 한 벌이 전 재산인 채로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어요. 모터 수리하는 한 평짜리 가게에서 일을 배워 나이 서른이 돼서야 제 가게를 열었죠."

정 대표는 1975년 서울 청계천에 환풍기를 파는 가게를 차리고 '동일공사'란 이름을 붙였다. 송풍기란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정부 연구소에 있다는 사람이 찾아와 송풍기를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물어요. 외국 카탈로그에 나온 사진 보고 몇 번 뚝딱뚝딱 만들어서 넘겨줬죠. 그게 농협의 벼창고 만드는 시범사업에 쓰였고, 본격적으로 송풍기를 만들기 시작한 게 결국 지금까지 온 겁니다."

정 대표의 아들 형권(36)씨는 중소기업 영업 전선을 5년 넘게 누비다 2007년 과장으로 금성풍력에 입사했다. 현재는 영업 담당 이사다. 인하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곧바로 아버지 뒤를 잇겠다는 아들에게 정 대표는 "뭘 안다고 들어오려고 하느냐. 샐러리맨 경험을 충분히 쌓고 오라"고 엄명을 내렸다.

"중소기업 두 곳을 다녔는데 첫 회사는 매출이 1000억원, 두 번째는 500억원이었어요. 아버지 회사는 매출이 70억원밖에 안 되니 차이가 크죠. 젊은 혈기에 '다 바꿔봐야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이 회사를 이끌어 온 직원들에게 인정받는 게 먼저라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금성풍력은 기술력만큼은 자신 있었지만 들어오는 주문 물량에만 집중할 뿐 영업에는 문외한이었다. 정 이사는 자신의 장기인 영업에 집중했다. 그는 "1년에 자동차 주행거리가 10만㎞가 넘을 만큼 전국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고 말했다. 부산 업체가 견적서를 요청하면 인천에서 곧장 차를 몰고 내려가 다음날 아침 견적서를 눈앞에 내밀었다.

"이메일로 보내지 왜 왔느냐"고 구매 담당자가 깜짝 놀라면 "명함이라도 한 장 받으려고요"라고 답했다. 그때까지 한 번도 거래한 적 없었던 건설업계의 납품망을 그렇게 하나 둘 뚫었다. 정 이사는 "지금은 국내 10대 건설사에 모두 우리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수만 해왔던 금성풍력은 이제 해외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아버지의 기술력과 아들의 영업력이 만나 시너지를 낸 것이다.

200여개 국내 송풍기업체 중 2세가 사업을 이어 하는 경우는 금성풍력이 거의 유일하다. 정 이사는 "중국산의 저가 공세에도 토종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관건"이라며 "아버지가 힘들게 개척한 시장을 꿋꿋이 지켜내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