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치열한 2위 다툼… 카드전쟁 또 불붙나

외환은행 윤용로 행장은 요즘 양복 안주머니에 신용카드 신청서를 가득 넣고 다닌다. 부인의 동창 모임까지 쫓아가 새로 출시한 '외환 2X카드'를 소개하고 즉석에서 가입하게 한다. 외환은행은 윤 행장의 지시로 본점 1층에 2X카드 모집 실적을 나타내는 전광판까지 내걸고 판촉에 열을 올린 덕에 2개월 만에 신규 회원 21만3000명을 확보했다.

외환은행과 같은 하나금융지주 산하로 카드사업을 하고 있는 하나SK카드도 지난 5월 신상품 '클럽SK카드'를 내놓은 뒤 3개월 만에 40만장 넘는 실적을 올렸다.

작년 11월 출시된 삼성카드의 '숫자 시리즈'는 9개월 만에 100만장을 이미 넘어섰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출시 1년도 안 돼 100만장을 넘어선 사례는 카드대란 이후 처음"이라며 "올해 말까지 200만장도 무난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3년 400만명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했던 카드대란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카드사 마케팅 전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특히 2위권 다툼이 치열해지면서 카드사 간 고객 유치 경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지난 3월 말 현재 경제활동인구(만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 능력이 있고 적극적인 구직 활동을 하는 인구) 1인당 신용카드 숫자는 4.7장에 달한다. 카드대란 직전의 4.6장을 넘어섰다. 금융 당국은 카드사들의 '마케팅 전쟁'의 부작용을 우려해 작년부터 카드 신규 발급 실태, 마케팅 비용 증가 동향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2003년 카드대란을 일으킨 전과(前科)가 있기 때문에 최근 '카드전쟁' 조짐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출' 경쟁에서 '카드 소비 늘리기' 경쟁으로

그러나 최근 카드사 간 경쟁은 대출을 늘리기 위해 '길거리 모집'을 불사했던 카드대란 당시와는 양상이 많이 다르다. 요즘 카드사들은 고객별 맞춤형 부가서비스를 제공해 건실한 신규 회원을 유치하고, 카드 소비를 늘리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카드사의 경쟁 전략이 달라진 것은 카드사의 주 수익원이 대출 장사에서 카드 결제 수수료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카드대란이 터진 2003년 전체 카드 이용 실적 517조원 중 277조원(54%)이 현금서비스·카드론 같은 대출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전체 카드 이용 실적(559조원) 중 대출(107조원) 비중은 20% 아래로 떨어졌다. 금융 당국이 가계부채 축소를 유도하고 있어 카드 대출을 늘리기 어렵다는 것이 카드사 운신의 폭을 제약하고 있다.

결국 전통적인 수익원인 카드 결제 수수료로 돈을 벌어야 하는 형편인데, 가맹점들로부터 수수료 인하 압박까지 받게 되자 카드사들은 "고객들이 지갑을 더 많이 열도록 하는 카드를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A카드사 영업부장)는 판단을 내리게 됐다.

하지만 카드사들의 과도한 마케팅 비용은 수익을 갉아먹고, 결국 그 비용을 서민 상대 고금리 대출에 전가할 수 있어 중장기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경쟁 과열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되면서 일부 카드사는 전략 수정에 나서는 모습이다.

차별화된 카드 신상품으로 마케팅 경쟁을 주도해 온 현대카드의 경우 최근 불확실한 경제상황을 감안해 신상품 출시는 억제하고 비용절감과 새 수익 모델을 발굴하는 데 더 주력하고 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신용판매 규모 확대는 한계가 있다. 경영을 효율화하면서 신사업을 찾아내지 못하면 (카드사의 경영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