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런던 장애인올림픽으로…'휠체어 펜싱' 김선미

"저는 예쁘게 꾸미는 걸 좋아해요. 학교도 경기미용고를 졸업했어요. 원래 꿈은 네일아트(손톱화장) 전문가가 되는 것이었어요. 여기서는 아침에만 잠깐 화장을 해요. 그래 봐야 금방 땀으로 범벅이 되니까요."

김선미(23)씨는 귀고리를 몇 개씩 달고 있었다. 붙인 속눈썹에 마스카라를 했고, 목 뒤에는 앙증맞은 도마뱀 문신을 새겼다. 길게 기른 왼쪽 손톱도 잘 손질돼 있었다. 그 또래의 신세대 아가씨였다.

내가 도착했을 때 그녀는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반바지 차림이었다. 일어서면 키가 170㎝쯤 될 것이다. 그녀의 왼쪽 바지통에는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한여름에도 바깥에서는 반바지를 못 입어요. 의족을 한 채로 다녀야 하니까요. 이 안에서는 그런 걸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다들 나와 다를 바 없으니까요."

그녀를 만난 곳은 경기도 이천시의 외곽에 있는 '장애인 체육종합훈련원'에서였다. 그녀는 '휠체어 펜싱' 선수다. 발 빠르게 움직이며 상대를 찌르는 펜싱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고정된 휠체어에 앉아있다. 발 대신 상체를 전후좌우 움직여 상대를 찌르거나 상대의 검을 피한다. 런던 장애인올림픽에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펜싱 종목 대표선수로 출전한다.

그녀는 장애를 타고나지는 않았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중3 때 교통사고를 겪었다. 여름날 친구들과 밤늦게 놀다가 귀가하던 길이었다. 그녀는 남자 친구가 모는 오토바이의 뒷자리에 탔다고 한다.

"깨어나니까 병원이었어요. 병원에서 들은 얘기로는 오토바이가 신호 위반을 해서 좌회전을 하던 차량과 충돌했어요. 운전하는 남자애는 괜찮았는데 저만 다쳤대요."

―그 나이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으니 말 잘 듣는 학생은 아니었군요.

"오토바이는 그날 밤 처음 타본 거예요. 공부보다 놀기를 좋아했지만, 불량 학생은 아니었어요. 사고가 났을 때 이렇게까지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병원에 누워서도 설마 다리 한 쪽을 잘라낼 줄은 몰랐어요."

―사고 직후 장애가 된 것은 아니고.

"사고가 나고서 1년 반쯤 입원해 있었어요. 몸을 움직이면 안 됐기 때문에 늘 침대와 함께 움직였어요. 오래 입원해 있었던 것은 제 다리를 살리기 위해서였어요. 다리 살이 썩어들어가면 살을 제거하고 다시 이식하는 수술을 열 번 넘게 받았어요. 너무 통증이 심했어요. 그래도 언젠가는 다 낫고 퇴원할 줄 알았어요."

―결국 치료가 안 됐던 것이군요.

"계속 치료를 받았지만 뼛속까지 염증이 생겼어요. 의사 선생님이 '절단할 수밖에 없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가장 반대했어요. 하지만 자를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저는 처음에 그 말을 전해듣고 많이 울었어요."

―어린 나이에 결심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병원에는 그런 절단 환자가 많았어요. 양쪽 다리를 절단한 언니가 와서는 '못 쓰는 다리를 갖고 누워 지내는 것보다 절단해서 의족을 착용하는 게 훨씬 편하다'고 말해줬어요. 많은 얘기를 들었어요. 나중에 제가 엄마에게 '수술받겠다'고 했어요."

―절단 수술을 마치고 깨어나 보니 자신의 달라진 모습이 어떠했나요?

"절단된 다리 부위가 붕대로 감겨 있었어요. 엄마가 '괜찮으냐?'고 묻기에 '괜찮다'고만 말했어요."

―엄마에게 원망을 쏟아내지는 않았고?

"아프고 갑갑하니까 짜증이 많이 났죠. 같이 붙어 있는 엄마가 힘들었죠. 하지만 사고는 내가 잘못해서 일어난 것이잖아요. 어느 날 엄마가 '다리 이식수술을 할 수 있으면 내 다리라도 떼줄 텐데'라고 울먹였어요. 엄마가 나보다 더 고통을 받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눈물을 흘리며) 내가 자식을 낳아 만약 내 딸이 그렇게 되면 어떠했을까 생각했어요."

―요즘 엄마는 선미씨에게 뭐라고 해요?

"속 썩였던 자식이 크면 더 잘한다고 하더니 요즘 네가 그렇구나 해요. 매일 아침 엄마는 일하러 가면서 제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요. 하루도 빼먹지 않아요. 이런 엄마를 생각하면 힘이 나요."

그녀의 휴대폰을 봤다. '쨍쨍 내리쬔다 상쾌한 하루 내 사랑, 엄마'라고 떠 있었다. 그녀 아버지는 건축 현장의 작업부로, 엄마는 중국집 요리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2남3녀 중 셋째다.

"퇴원 무렵 부모님이 저를 위해 계단이 없는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그렇게 신경써주는 게 참 고마웠어요. 하지만 갑자기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아졌어요. 재활치료를 받는 걸 알지 못해 그냥 퇴원했던 거예요. 의족을 차고 걷는 방법조차 몰랐으니까요. 우울증으로 한동안 집 밖을 안 나갔어요."

―어떻게 극복했나요?

"학교를 가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했어요. 스스로 걷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었죠. 처음엔 의족을 한 뒤 양쪽 목발을 짚고 다녔어요. 친구들도 많이 도와줬어요. 같이 놀자고 불러냈거든요. 우스운 모습이지만, 의족을 하고서도 많이 놀러다녔어요. 혼자라면 그렇게 못 했을 거예요."


―장애인이 된 뒤 친구들이 '안됐다'며 선미씨를 대하는 게 달라지지 않았나요?

"중학교 때 친구들은 사고 전의 내 모습을 알잖아요. 내가 뭘 하려면 '선미야 괜찮아, 넌 안 해도 돼'라고 말려요. 전 오히려 그게 불편했어요. 처음부터 내 장애 모습만 봐왔던 고등학교 친구들이 편하고 좋아요. 이들은 서슴없이 '너도 할 수 있잖아. 해봐'라고 말하거든요."

―스스로 비장애인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나요?

"저도 다치기 전에는 장애인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막상 겪어 보니 동정을 받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장애라서 약간 불편한 점이 있는 것 말고는 똑같아요. 평소처럼 대해줬으면 좋겠어요."

―어떤 점이 가장 불편해요?

"뛰지 못하는 것과 씻을 때마다 의족을 벗었다 착용하는 것이 불편해요."

―남의 시선이 의식되지 않나요?

"그전에는 위축됐어요. 내가 절면서 걷는 걸 지켜보지 않을까, 바지 속의 잘린 다리를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혼자서는 돌아다니질 않았어요. 이제는 거의 의식하지 않아요. 다만 아기들한테는 신경이 쓰여요. 대중목욕탕에 가면 아기들이 나를 보고 놀라요. 몸에 흉터도 많고 다리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대중목욕탕에는 안 가나요?

"거의 밤에만 가요. 사실 두 다리를 절단한 장애인들도 휠체어 타고는 잘 돌아다녀요. 저분들에게는 나처럼 이렇게 걷는 것도 행복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 다리가 절단된 남아공의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는 정식 올림픽에서 비장애인 선수들과 겨뤘는데.

"그 선수를 보면 저도 '다리가 무릎 밑에서 절단됐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장애인이 얼마나 많아요. 아예 손을 못 쓰는 사람, 앞이 안 보이는 사람도 있잖아요.

이들에게는 나처럼 걷고 서 있을 수만 있는 것도 행복이죠. 사고가 났지만 내가 이렇게 다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사지가 멀쩡한 것만 해도 정말 축복받은 것임을 사람들은 잘 몰라요. 길 가다가 노숙자들을 보면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왜 저 몸으로 저렇게 살까' 하는 생각도 드니까요."

―'환각(幻覺)의 다리'라고 해서 잘린 다리가 여전히 붙어 있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면서요.

"어떤 환자는 자다가 깨어나면 잘린 다리가 그대로 있는 걸로 착각해 그쪽 다리로 서려고 해요. 저는 그렇지는 않았는데, '환상통(痛)'은 있어요. 없는 왼쪽 다리가 아프고, 발바닥이 간지러울 때가 있어요."

―내가 왜 그때 오토바이를 탔을까 하는 후회가 많이 되지요?

"그것도 자주 타고 다닌 게 아니라 그날 밤 처음 탔으니까요. 병원에서 하느님을 향해 딱 한 번 욕을 해본 적이 있었어요. '사고는 누구에게나 날 수 있는데 이 많은 사람 중에서 하필 내게 이러느냐'고 했어요. 여섯 살 위 언니가 '하느님은 그런 걸 이겨낼 수 있는 사람에게 시련을 준단다. 너는 이겨낼 수 있고 앞으로 큰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해줬어요."

―언니 말이 맞는다고 봐요?

"저는 언니 말이 맞는다고 믿어요. 어쨌든 장애를 이겨냈고, 올림픽에서도 메달을 따는 큰 사람이 될 테니까요."

―'휠체어 펜싱'은 어떻게 알고 하게 됐나요?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장애인 펜싱선수를 알게 됐어요. 그분이 '퇴원하면 펜싱을 같이 해보자'고 했어요.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퇴원 직후 방구석에만 처박혀 바깥을 안 나가니까, 엄마가 '그 펜싱 운동이라는 걸 한번 해보라'고 했어요.

친구들과 동두천체육관에 휠체어 펜싱 훈련하는 걸 구경갔어요. 보고는 그냥 집으로 돌아왔어요. 내가 괜히 우습게 될까 봐 겁이 났어요. 한 달쯤 지나 다시 갔어요. 무슨 생각으로 간 건지 모르겠어요. 그 자리에서 만난 선수들이 '장애인체전이 곧 있으니 같이 하자'고 권했어요."

―입단 테스트도 없이 선수가 된 건가요?

"휠체어 펜싱의 여자 선수는 다 합쳐 20명도 안 돼요. 몇 달 연습하다가 체전에 나갔는데 입상을 못 했어요. 힘든 운동인 줄 모르고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검은 잡아보지도 못해요. 기본 자세만 연습시켜요.

그런 뒤에는 벽만 보고 찌르는 동작을 반복해요. 휠체어에서 절단 장애자들은 신체 중심을 잡기도 어려워요. 투구를 쓰고 있어 사람들 눈에는 안 보이지만 온몸이 땀에 절어 있어요. 저는 승부욕이 있었어요. 3년쯤 지나 전국체전에 나가 메달을 땄으니까요."

―몇 명 안 되는 선수들 사이에서 따는 메달이란….

"(웃음) 그래도 떨어지는 선수가 있잖아요."

그녀는 2010년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이번 장애인올림픽에는 펜싱 종목에 혼자만 출전하나요?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국제대회에 참가해 세계 랭킹 포인트를 쌓아야 해요. 랭킹 12위까지 참가 자격을 줘요. 국제대회에 참가하려면 사비가 많이 들어요. 그게 어렵죠. 저는 12위로 간신히 올림픽 출전 자격이 주어진 거죠."

런던 장애인올림픽은 오는 29일부터 열린다. 한국은 사격·수영 등 13개 종목에서 88명의 선수가 참가한다. 메달을 딴 선수에게는 정식 올림픽에서와 똑같은 액수의 연금과 정부 포상금이 지급된다. 금메달의 경우 매달 연금 100만원과 일시 포상금 6720만원을 지급받는다.

―경제적 후원을 해주는 기업이 있나요?

"운동을 안 할 때는 PC방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제가 다리를 저니까 '보는 사람들이 불편하다'며 잘 안 써줘요. 몇 달 전부터 휠체어를 만드는 회사가 지원을 해주고 있어요."

국내 장애인 수는 252만명이다. 9할이 후천적 장애인이다. 이들 중 37%는 김선미 씨처럼 어느 날 사고로 장애인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