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선진행정 속살까지 샅샅이 보고 왔어요"

'지역을 풍요롭게 만드는 글방'이라는 의미를 지닌 향부숙(鄕富塾·숙장 강형기 충북대 교수)이 공무원 해외연수의 모범 사례로 눈길을 끌고 있다. 충북 청주에 본부를 둔 향부숙은 전국 지자체 공무원들이 지방자치 분야에 대해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쌓게 하는 교육시설이다. 유명 지방자치학자인 강형기 교수가 일본의 마쓰시다 정경숙(松下政經塾)을 모델로 삼아 2008년 공무원 인재 양성기관으로 설립했다. 창조공방은 4~5급 간부를 대상으로 하며, 정책공방은 6~7급 공무원들이 참여한다. 1년에 120명가량 교육을 받고 있다.

1년 과정의 향부숙 교육일정 중에는 해외연수가 한 차례 포함돼 있다. 그러나 향부숙의 해외연수는 관광 위주로 짜여져 예산낭비 논란을 빚고 있는 일부 공무원 연수 프로그램의 틀을 완전히 벗어난다. 향부숙 연수생 37명은 지난 5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일본 아오모리현(靑森縣)을 다녀왔다. 이들의 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무원 해외연수의 모델 케이스를 발견할 수 있다. 연수 주제는 '커뮤니티 비즈니스'로 정했다. 지역사회의 작은 공동체들이 관(官)의 예산지원을 받지 않고 어떻게 생존전략을 세워가는지에 대해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살펴보는 작업이다.

공항에 내린 연수생들은 곧바로 아오모리시(市) '컴팩트 시티' 시찰에 나섰다. 컴팩트 시티는 공동화된 도심지를 활성화시켜 더 이상의 시가지 확대를 막기 위한 마스터플랜에 의해 조성됐다. 재개발 사업의 하나로 생선 시장과 패션브랜드 매장, 공립도서관을 9층짜리 건물에 혼합해놓은 상업시설, 중심상점가 빈 점포를 저렴하게 임대해 소상공인을 육성하는 프로그램 등을 둘러봤다. 일본 3대 축제로 꼽히는 '네부타' 등(燈) 축제에선 한국과 달리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자발적으로 행렬에 동참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주민참여형 축제의 전형을 면밀히 관찰했다.

다음 날도 현장학습 위주의 연수가 이어졌다. 맞벌이 부부 등을 위한 육아지원과 커뮤니티 카페사업으로 유명한 비영리법인 어린이센터를 방문하고, 오후에는 농가민박, 복숭아·블루베리·앵두 등을 매개로 한 농업관광, 산지직매장 등으로 유명한 농촌마을 '달자촌(達者村)'을 꼼꼼히 견학했다. 특히 7~8개의 팀으로 나눠 현지 농민들의 집에서 민박을 하면서 일본 농민들의 생활상을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가졌다. 제주도 예산담당관실에 근무하는 류일순씨는 "제주도 농업관광의 청사진을 그려볼 수 있었던 값진 기회"라며 "지역사회를 가꿔가는 것은 결국 주민들의 자발적인 의지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연수생들은 3일째와 마지막 날 오전까지도 아오모리 소도읍의 지역교류센터, 주민건강센터, 폐쇄위기에 놓인 기차역 앞 상가 활성화 현장 등을 방문하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냈다.

한명현 양평군 기획감사실장은 "단순한 눈요기에 그치지 않고 지방행정 현장을 깊숙한 곳까지 살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필근 수원시 세정과장은 "향부숙 과정을 이수한 후에도 개인적으로 매년 동참하고 싶은 해외연수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전직 공무원 출신으로 연수단을 동행한 데츠야 엔도(遠藤哲哉) 아오모리공립대 교수는 "일본에서도 공무원 해외연수를 실시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철저하게 공부하는 프로그램은 본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앞서 향부숙 연수생 가운데 1진은 지난 6월 24일부터 보건의료, 복지, 평생학습 등을 주제로 일본 나가노현(長野縣) 일대를 둘러보았다. 향부숙의 올해 2차례 해외연수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신청자가 정원을 초과해 많은 공무원들의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강형기 향부숙장은"대부분의 공무원 해외연수가 예산낭비 논란을 빚는 것은 처음부터 연수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은 채 무조건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방식으로 일정을 세우기 때문"이라며 "현장에 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정확한 테마를 정해 실무를 배우고 오는 방향으로 연수 프로그램을 구상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