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순글래머 수식어 깨겠다… 제대로 된 연기로"

"그렇게 위험한 비행을 한 이유가 뭔가?"(전투비행단장)

"뭐든 시도해보지 않으면 그 가능성을 영원히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정태훈)

영화 'R2B: 리턴투베이스'(감독 김동원)에서 에어쇼 도중 무리한 비행을 해 전투비행단으로 전출된 전투기 조종사 정태훈(정지훈·가수 비)이 부대장과 나누는 대화다. 한국 최초로 전투기 고공액션을 시도했지만 초반 흥행은 기대에 못 미치는 이 영화의 현재 심정과 처지를 대변하는 듯하다.

'R2B'는 사고뭉치 정태훈, 원칙주의자 이철희(유준상), 커플조종사 박대서(김성수)-오유진(이하나), 완벽주의 정비사 유세영(신세경) 등 개성 있는 공군들이 모인 21전투비행단 이야기다. 한국 영화 최초로 10000m 상공과 서울 도심에서 F-15K, TA-50 등 첨단전투기가 고공액션을 펼친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실제 촬영 화면에 컴퓨터 그래픽을 섬세하게 덧댄 영상으로 한국산 고공액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이 나온다. 그러나 스토리 면에서는 주인공 정태훈에게만 집중하느라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는 감질나게 끝내거나 어색하게 마무리짓는다. 신세경(22) 등 어려운 역할을 설득력 있게 소화한 배우들의 노력이 결과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말이다.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신세경을 만났다. 군인의 강한 언행, 달달한 애정 표현, 코믹한 주사(酒邪)까지 폭넓은 연기를 선보인 그 역시 "세세하게 챙겼던 부분들이 영화로 다 표현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여군 전투기 정비사는 그동안 한국 영화에 없었던 배역이다. 무엇을 참고했나.

"촬영장소였던 대구 공군부대에서 진짜 여군 정비사 2명을 만났다. 그분들을 모델로 삼은 것은 아니지만 많이 관찰했고, 궁금한 걸 물어봤다."

―극중 '유세영'이 완벽에 집착하는 게 과할 정도다.

"전투기 정비사는 손끝으로 생명을 만지는 일이다. 작은 결함도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엄청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나는 단단하고 차돌 같은 사람이 한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서 마음이 어떻게 풀어지는지를 잘 표현하고 싶었다."

―9세 때 서태지 5집 수록곡 포스터 모델로 데뷔했다. 어려서부터 배우가 꿈이었나.

"첫 작품이라 할 만한 건 14세 때 출연한 '어린 신부'다. 이후 공백(5년)이 있었다. 활발하게 활동하고 배우라는 직업에 확신을 갖게 된 건 최근 3년 내의 일이다."

―학업을 위해 쉰 건가.

"'지붕 뚫고 하이킥'(2009)부터 운이 좋아 주목을 받았지만, 그전에는 아무리 원해도 캐스팅이 안 됐다. 그래서 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학창시절이야말로 내게는 천금을 줘도 바꾸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경험이다."

―최근작에서 한석규(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송강호(영화 '푸른 소금') 등 간판 연기파 배우들과 공연했다. 배울 점이 있던가.

"내 연기의 문제점들을 보게 됐다. 그걸 공개하면 관객들이 그 부분만 보게 되니 밝히지는 않겠다. '뿌리 깊은 나무' 때는 그 문제점 때문에 연기에 자신감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욕심 있는 배우다. 문제를 고치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식모' '공순이' '정비사' 등 독특한 여성 캐릭터를 맡았다.

"내 얼굴이 그렇게 생겼나?(웃음) 이상하게 인연이 닿는 캐릭터 중에 자립형 여성이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여성상도 그렇기 때문에 늘 기분 좋은 일이었다."

―'청순글래머'처럼 여성의 몸을 평가하는 수식어도 붙는데.

"내 외형만 따지는 평면적인 수식어다. 여자 연예인으로서는 감당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배우로서는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줘 깨뜨려야 할 일이다."

―연기력 논란도 있었다.

"정말 시소 타는 것 같다. 호불호가 갈리는 건 내가 견고한 배우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외부적인 일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했던데.

"지금의 나는 '연기만 할래요'라고 말할 만큼 성장한 배우는 아니다. 또 이 일도 하나의 산업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소통해가며 결정해야 한다. 때문에 연기 이외에 내가 충족시켜야 할 덕목이 많고, 하지 말라는 것도 너무 많다. 그게 여전히 고민이다."

―배우로서 어떤 목표를 갖고 있나.

"외부의 시선이 아닌, 나 스스로 생각한 허점을 계속 메우는 배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