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 기대한 꽃게마저… '피시플레이션(Fish+Inflation·수산물 가격 급등으로 인한 물가 상승)' 비상

17일 오후 3시 전남 영광군 안마도로부터 북쪽으로 15㎞ 떨어진 해상. 4.26t급 연안자망 어선 '성일호'가 꽃게를 잡아 올리고 있었다. 배 위에서 도르래처럼 생긴 도구를 돌리자, 바닷속에서 길고 성긴 녹색 그물이 서서히 끌려 올라왔다. 그물 사이엔 약 15㎝마다 한 마리꼴로 꽃게가 촘촘하게 꿰여 갑판 위로 딸려왔다.

선원들은 빠른 손놀림으로 그물에서 꽃게를 떼내 차가운 물통 속에 던져 넣었다. 서용진 선장은 "전날 폭우 때문에 꽃게가 잘 안 잡혀서 원래 조업하던 곳보다 15~20㎞ 더 먼 바다로 나왔다"고 말했다.

◇가을철 식탁 물가 오른다

폭염 때문에 갈치·고등어·오징어 등 수산물 가격이 껑충 뛰어오른 가운데 수산업계가 '구원투수'로서 기대를 걸었던 꽃게마저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꽃게탕 등에 많이 쓰이는 수꽃게는 전통적으로 대형마트 수산물의 25%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가을 수산물. 난류성 어족에 속하는 꽃게는 예년에는 여름철 더위 피해가 적어 어획량이나 가격이 안정세를 보였다.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이달 꽃게 어획량은 지난해 3분의 1로 격감하고, 9월에도 절반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측된다. 원래 꽃게는 수온이 섭씨 24~25도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올해는 바닷물 온도가 28도까지 올라가는 바람에 꽃게들이 움직이려 들지 않아서 잘 안 잡히는 상황이다.

꽃게잡이가 본격화하기 직전 쏟아진 폭우도 조업에 지장을 줬다. 정부는 남획(濫獲)을 막기 위해 매년 6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꽃게잡이를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5일 전국적으로 폭우가 쏟아져 다음 날까지 풍랑주의보가 내리는 바람에 어민들은 17일이 되어서야 조업을 시작했다.

꽃게 조업 시작을 기다리면서 전북 부안군 격포항 인근에 며칠씩 숙박까지 하고 있던 수산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물량을 대지 못할까 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대형마트들은 지난 주말부터 산지(産地) 직거래로 꽃게 가격을 시세보다 12~13% 낮춰 팔겠다고 대대적인 광고까지 낸 상황이다. 이마트 원국희 바이어는 "원래 예정했던 구매량의 절반 정도밖에 확보하지 못했다"며 "어획량이 달리다 보니 밑지고 장사해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추석 제수용품도 들썩

꽃게뿐 아니다. 최근 주요 농수산물은 줄줄이 가격이 올라 주부들의 근심을 더하고 있다. 여름철 대표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은 민어는 해파리떼 습격으로 어획량이 크게 줄어 산지 가격이 지난해보다 25~30% 올랐다. 대형마트에서 ㎏당 판매 가격은 2만4000~2만7000원 선. 역시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삼치는 지난해 8월 4500원대(400g 내외)에서 지금은 4900원대에 팔리고 있다.

폭염으로 농산물 가격도 뛰었다. 100g당 680~700원(대형마트)이던 상추류는 한 달 새 900원가량으로 올랐고, 열무와 깻잎도 각각 16~18%씩 올랐다. 배추와 양념류도 급등해 가을 김장에 비상이 걸렸다. 늦더위에 과일 수요가 늘면서 수박·참외는 한 달 전보다 전국 평균 소매가가 각각 94·48% 올랐다. 과일과 생선 등 추석용 제수용품도 벌써 들썩이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농산물과 수산물 가격 급등으로 일반 물가까지 상승하는 한국판 애그플레이션(agriculture+inflation)과 피시플레이션(fish+inflation)이 이미 시작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밀·옥수수·콩 등 국제 농산물 시세도 급격히 올라 올가을과 겨울 물가에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