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의 히어로 & 히로인] [25] 사회 최고위층 인사들 사실은 가장 反사회적?

이름, 패트릭 베이트먼. 스물일곱 살, 하버드 MBA 출신, 월스트리트 금융합병사의 최고경영자, 잘생긴 얼굴, 완벽한 몸매, 최고급 명품을 척척 골라 입는 세련된 취향과 그렇게 할 수 있는 경제력.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한, 그를 부러워하지 않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성공한 뉴요커답게 그는 철저히 '이너서클' 안에서만 산다. 패트릭(크리스천 베일)의 생활권에는, 비슷비슷한 스타일을 한 멋지고 잘난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들은 매일 새로운 레스토랑과 새로운 파티와 새로운 애인을 찾아 나비처럼 떠돈다. 앞에서는 예의 바르게 반가워하고, 돌아서면 무성의하게 험담한다. 자신이 험담하는 상대의 이름과 얼굴도 헛갈려하면서 말이다.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만 실은 오직 자신의 이야기만을 허공에 대고 떠들어댄다.

이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American Psycho)'의 패트릭은, 결코 완전하게 채워질 수 없는 그런 허위의 세계에서 탄생한 일종의 괴물일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납치해 죽이는 두 얼굴의 연쇄살인마, 패트릭의 첫 범행 대상은 동료 폴 알렌이다. 폴의 잘못은, 패트릭이 예약에 성공한 적 없는 잘나가는 레스토랑을 예약했다고 자랑한 것, 그리고 완벽하게 디자인된 새 명함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그것들은 좁고 폐쇄적인 '그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것이기에 더 치명적으로 중요한 것이 된다. 상대에게 살의를 느낄 정도로.

패트릭이 폴의 시체를 넣은 커다란 가방을 끌고 가는 모습을 우연히 본 동료는 그에게 묻는다. "오, 그 가방 멋진데! 어디서 샀어?" "장 폴 고티에." 동료는 '역시'라는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사라진다. 가방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묻지 않는다. 상대방의 '속'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전혀 관심이 없으며 죄책감과 동정을 모르는 '반사회적(안티소셜) 인격장애자' 혹은 '아메리칸 사이코'가 비단 뉴욕의 패트릭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