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일 도시문제전문기자 심층리포트] 지자체 수많은 축제엔 '찡한 이야기'가 없다

민선자치 시작 이후 15년 넘게 흘렀다. 대부분 시·군의 변치 않는 고민은 인구·소득 감소로 인한 침체된 분위기다. 그래서 경쟁적으로 슬로건·로고를 만들고, 박물관·기념관을 짓고, 숱한 축제·엑스포를 개최하며 홍보에 매달렸다. 주민 자긍심 향상과 단합, 그리고 무엇보다 수익 증대가 목표였다.

하지만 성공 스토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함평 나비축제와 제천 한방바이오엑스포 정도다. 생태수도 순천, 물·얼음·눈의 나라 화천도 괜찮았다.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일회성·소비성 이벤트에 그쳤다. 더러는 외부의 무관심 속에 결국 곤궁한 주민 호주머니만 쥐어짜는 결과를 빚기도 했다. 드라마 촬영지를 유치했다가 종영(終映) 뒤처리에 골머리 앓는 곳도 허다하다. 전문가들은 "주로 특산물이나 단편적 과거사에 의존할 뿐, 독창적 콘텐츠 개발에 무관심했던 탓"이라고 말한다. 기존 자원만으로 존립 가능한 곳은 역사·문화의 경주와 자연·환경의 제주 정도라는 것. 상희철 공주영상대 이벤트학과 교수는 "주민의 자발적 참여와 수익으로 연결될 킬러콘텐츠 개발이 관건"이라며 "마케팅에 관한 개념 자체가 부족한 것이 결정적 패인"이라고 지적했다. 독창적 마케팅에 성공한 외국 예로는 생수의 프랑스 에비앙, 국제사진페스티벌로 유명해진 일본 홋카이도의 히가시가와를 들 수 있다.

[스토리텔링 활용 지자체들]

선셋 장항 페스티벌 - 도시재생 홍보, 침체→부활 콘셉트
인구 줄며 쇠락하는 장항에 공연·전시 2만4000명 다녀가

지난달 장항(長項) 축제에서 만난 남녀 대학생에게 물었다. "장항이 어디 있는지 전부터 알았나요?" 둘 다 몰랐다고 했다. "그럼 서천(舒川)은 알았나요?" 역시 몰랐다고 했다. 서천은 장항읍·한산면 등을 가진 충남 해안의 군(郡)이다. "어떻게 대학생들이 장항도 서천도 몰랐을까?" 여학생이 말했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고.

기자는 장항을 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장항제련소(1990년 폐쇄). 중학 시절 대천해수욕장에 갈 때 탔던 철도 장항선. 그런데… 이게 전부다. 이후 긴 시간 장항은 잊힌 곳이었다. 한숨이 나왔다. 이런 무관심의 벽(壁)을 넘고 장항은 보란 듯 일어설 수 있을까….

지난달 장항에서 열흘간 큰 축제가 열렸다. '선셋 장항 페스티벌'. 4년 동안 300억원을 투자해 마무리 단계에 온 '장항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홍보하는 행사다. 장항은 복선화(複線化)로 역이 옮겨가면서 생긴 폐선(廢線) 부지와 물양장(物揚場·작은 부두) 등을 활용, 미디어콘텐츠센터·문화공원·특산물판매센터·해안랜드마크 등을 건설하고 있다. 한때 서천군 인구는 15만명, 장항읍에만 3만5000명이 살았다. 지금은 각각 5만8000명과 1만2000명으로 줄었다. 금강 건너 군산에 비하면 쇠락 일로다. 특히 금강 하굿둑 건설 후로는 군산의 위성도시로 전락한 느낌마저 있다.

장항 페스티벌은 옛 미곡 창고·그물·닻 공장 등을 활용한 공연·전시·체험프로그램으로 채워졌다. 2만4000명이 다녀갔다. 장항 인구의 두 배다. 첫날 특별열차로만 외국인 200명을 포함해 500명이 왔다. 작가·스태프·자원봉사자 등 진행인력도 500명에 달한, 장항 사상 최대 행사였다. 최정한 축제 총감독은 "침체된 공간에 활력을 넣어 우리 모두 새롭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계기로 삼자는 뜻"이라고 했다. '부활' 혹은 '반전'이 콘셉트다. 이대성 서천발전전략사업단장은 "첫 단추는 성공적으로 꿰었지만 진짜 할 일은 이제부터"라며 "문제는 지속 가능한 동력을 위한 치밀한 마케팅"이라고 했다.

제주 사람얘기 수집 - 마을 다니며 테마별 1500건 찾아

요즘 제주에선 문화해설사 50명이 자연마을 곳곳을 다니며 취재하고 있다. 특유의 생활상, 특히 사람들 얘기 수집이 목적이다. 1500가지를 모은 다음 150개를 추려 스토리텔링 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예를 들면 대나무 바구니나 소규모로 소금을 만들던 사람 등이다. 그가 살아있으면 더 좋고, 구전(口傳)뿐이어도 관계없다. 제주발전연구원 김태윤 책임연구원은 "주로 장·노년으로부터 예전과 현재 모습을 들어 정리하고 있다"며 "더 미루다가는 흔적마저 사라질지 몰라 나섰다"고 했다. 이 작업이 끝나면 제주에 적잖은 '테마마을'이 탄생한다. 우선적 목적은 멸실(滅失) 위기의 문화유산 발굴, 궁극적 목표는 이를 활용한 마케팅이다. 연구원 측은 "결국은 소득으로 이어져야만 콘텐츠 재창조와 유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진천 김유신 마케팅 - 김유신 출생 '성공의 땅' 부각시켜

충북 진천군은 신라 장군 김유신을 활용한 스토리텔링마케팅 작업에 한창이다. '생거진천 사거용인' '진천쌀' '붕어찜' 따위는 사실 식상하다. 그런데 진천과 김유신이 무슨 관계일까? 진천은 김유신이 태어난 곳이다. 멸망한 가야국 왕자인 아버지 김서현이 신라 진골 만명과 사랑에 빠져 왕실의 분노를 샀다. 둘은 멀리 진천으로 도피해 김유신을 낳았고, 아이는 여기서 문무를 닦고 지도자 자질을 키웠다. 진천 태령산에는 김유신 태실이, 길상사에는 영정이 있다. 채택한 브랜드는 '성공의 땅, 진천'. 이 작업 책임자인 브랜드스토리 정영선 이사는 "김유신의 성공을 산업단지 건설, 일자리 창출, 젊은층 유입,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진천의 성공으로 연결하는 것"이라고 했다. 진천군은 이 스토리를 보강하기 위해 진천으로 옮겨와 성공한 기업인들 이야기를 취재해 정리하고 있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란]

코끼리에 쑥대밭 됐던 식당
'코끼리 들어온 집' 개명… '코끼리 정식' 메뉴로 대박

2005년 봄, 서울 건국대 후문 앞 식당 '미가(味家)'는 코끼리 세 마리의 습격을 받았다. 인근 어린이대공원 행사에 동원됐던 녀석들이 쳐들어와 아수라장을 만든 것. 주인은 혼비백산했다. 하지만 리모델링에 들어갔고, 한 달 뒤 다시 문을 열었다. 가게 이름이 바뀌었다. '코끼리 들어온 집, 미가'. 간판에 코끼리 세 마리를 그리고, 식당 안에도 피습(被襲) 당시 사진 넉 장을 구해 걸었다. 메뉴에는 '코끼리 정식'(한정식·8000원)을 추가했다. 주인 금택훈(여)씨는 난장판 와중에서도 홍당무를 주워 먹던 아기 코끼리가 생각나 일부러 찾아가 홍당무를 한 아름 선사했다. 금씨는 "그 뒤 일본인 단체 관광객이 올 정도로 손님이 몰렸다"며 "7년이 지난 요즘도 코끼리 정식 덕에 산다"고 했다. 해프닝으로 끝나기 쉬운 일에 스토리와 아이디어를 얹어 지속적 수익으로 연결한 사례다. 전형적인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다.